우륵박물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금길 98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전시하여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 전국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테마 박물관이다. 맑고 깨끗한 가야금의 고장 고령에서 우리 민족 고유 악기인 가야금과 가야금 창시자인 우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며, 입혀져 가는 전통음악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토기에 장식된 토우, 금동벡제대향로 등 유물 속에 남아있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복원한 복원품과 신창동 현악기 복원품, 우리나라 각종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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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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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악성, 우륵을 기리는 박물관 우륵박물관 입구에 도착하셨나요? 박물관이 세워진 이곳은 실제로 우륵이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가야금 소리가 정, 정, 정, 이렇게 울려 퍼졌다고 해서 이 일대를 ‘정정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성인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를 ‘악성’이라고 부르는데요. 고구려의 왕산악, 조선의 박연과 더불어 대가야의 우륵을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꼽고 있답니다. 박물관 정면 왼쪽에 ‘우륵상’이 서 있는데요. 여기서 박물관의 지붕을 바라보면, 가야금을 본 따서 지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붕을 통해 가야금의 형태를 보면 윗면은 둥글고 아랫면은 평평한대요, 이는 둥근 하늘과 평평한 땅을 상징하죠. 또 12개의 가야금 줄은 일 년의 열두 달을 표현한 것이에요. 대가야 사람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가야금의 모양에 담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야금에 대해서는 박물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해요. 박물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뒤로 돌아 마을과 산을 한번 둘러보세요. 열한 시 방향으로 멀리 산 위에 세워진 탑이 하나 보일 텐데요. 이게 바로 ‘우륵기념탑’이에요. 우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가야금 모양의 탑을 세운 것이죠.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니, 박물관을 둘러보신 후에 가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제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가야금과 우륵 선생의 이야기를 우륵박물관 해설사의 목소리로 들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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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이전의 고대 현악기 [해설] 6세기 대가야의 가실왕 시대에 만들어진 가야금. 가야금 이전에도 우리 민족은 여러 종류의 악기를 만들고 연주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특히 중국 악기와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이 같은 사실은 고대 악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전시물들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역사서에 나와 있는 고대 현악기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삼국지>의 위서 한전 편에는 가야로 발전하기 이전 시대인 변한의 풍습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들어보실까요? [<삼국지>의 저자] “변한의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슬’과 비슷한 악기가 있는데, 퉁겨서 소리를 낸다. 또 연주곡도 있다.” [해설] 여기서 말하는 ‘슬’은 중국의 현악기인데요, 가야 지역에는 그 이전부터 이와 비슷한 악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만의 연주음악이 있었다고 하니, 가야 지역의 음악 전통이 꽤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지요. 우리나라의 고대 현악기는 여러 지역에서 악기의 일부분만 발견돼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들이 표현돼 있는 삼국의 유물들을 통해서 당시 쓰였던 악기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답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의 금동대향로가 그 대표적인 예죠. 가야와 신라에서도 흙으로 만든 인물상인 토우에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남아 있는데요. 몸체를 짧은 방향으로 세우고 줄 부분을 바깥으로 가도록 해서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전시물을 통해 확인해 보십시오. 결론적으로 가야금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지녀왔던 문화적, 음악적 유산을 토대로 가야의 정신을 담아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의 전통악기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이제 그럼 우륵 선생을 만나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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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전해진 우륵의 음악, 전통이 되다 [해설] 우륵과 가야금을 설명하고 있는 전시물들이 보이실 텐데요. 그 오른편에는 <삼국사기> ‘악지’가 놓여 있습니다. 당시 대가야의 정치적인 상황을 토대로 우륵과 가야금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답니다. 대가야의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를 보고 만든 가야금. 그리고 우륵이 지은 가야금 연주곡 12곡.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진흥왕은 우륵의 진가를 알아보고 신라에 정착하여 살도록 권유 했습니다. [진흥왕] 허허허,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우륵] 폐하께서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진흥왕] 부디 우리 신라의 악사들도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기 바라오. [우륵] 네, 분부대로 그리 하겠사옵니다. [해설] 우륵은 신라의 악사들에게 가야금 연주를 가르쳤고, 마침내 신라의 악사들이 진흥왕 앞에서 연주를 하자, 왕은 크게 기뻐했지요. [진흥왕] 하하하, 과연 듣던 대로 가야금 연주는 심금을 울리는구려. 수고하시었소. [우륵]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해설] 이후, 진흥왕은 우륵의 음악을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인 대악으로까지 삼았습니다. 우륵은 신라의 악사들에게 가야금 연주와 더불어 노래와 춤까지 가르쳤고, 그래서 합주와 공연이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우륵이 타던 가야금은 중국에까지 알려졌고, 일본의 전통 악기와 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죠. 안타깝게도 가야와 신라에서 연주되던 가야금의 실물은 전해지지 않지만, 일본 왕실의 창고에 신라에선 전래된 가야금 3점이 남아 전해지고 있답니다. 자, 그럼 자리를 옮겨 우륵이 지은 12곡이 지닌 의미를 알아보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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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통합을 위한 우륵 12곡 <삼국사기> 악지를 펼쳐놓은 전시장 옆으로 우륵 12곡의 의미에 관한 전시물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륵은 왜 열두 개의 곡을 지은 것일까요? 대가야의 가실왕은 가야 지역의 여러 나라가 각기 다른 방언을 지니고 있어서, 12개의 지역에 해당하는 곡을 짓게 했어요. 그래서 각각의 곡은 특정 지명과 연관되어 있지요. 첫 번째 곡명인 ‘하가라도’는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중심국이 된 후, ‘남가라’로 불리던 김해 가락국을 뜻하는 것이고, 이에 반해 두 번째 곡 ‘상가라도’는 이곳 고령의 대가야를 뜻하죠. 이렇듯 12곡으로 표현된 가야 지역을 보면 당시 대가야의 영역을 알 수 있는데요.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야권과 섬진강 쪽의 남원, 임실, 그리고 남해안 지역의 여수 순천 등이 대가야의 세력권 안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5세기 말, 대가야가 전성기를 맞았을 때의 영역과 대체로 일치한답니다. 특히 전라도 지역으로 그 영역이 확장됐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나라의 땅이 넓어졌다 해도, 초기에는 결속력이 약하기 마련이지요. 바로 이 때문에 12곡이 만들어진 거랍니다. 즉, 대가야권의 단결을 도모하면서 왕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륵이 12곡을 만든 시기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아요. 510년대 대가야가 전성기였을 때 우륵이 12곡을 만들었지만, 나라가 어려워지자 신라로 망명했다는 설이 있고요. 516년 백제의 공세로 대가야가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나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이렇듯 우륵이라는 인물과 그가 만든 음악은 대가야의 흥망성쇠를 모두 담고 있어서, 대가야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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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법이 다양한 가야금, 그리고 새로운 탄생 이곳에 전시된 다양한 가야금들을 둘러보시며 가야금의 연주방법과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야금은 종류도 여러 가지고, 연주하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흔히 퉁기는 부분을 무릎 위에 두고, 다른 한쪽은 땅에 비스듬히 놓고 연주하는 방식을 떠올리실 텐데요. 하지만 신라 토우를 통해 확인하셨듯이, 수직에 가깝게 악기를 세워 연주하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일본 왕실의 창고에 남아 전해지는 3대의 신라 가야금에서는 끈이 달려 있거나, 끈을 매었던 흔적이 발견됐는데요. 악기를 몸에 걸고 일어나서 연주를 했던 거지요. 아마도 가야금이 단독으로 연주되었다기보다, 춤과 노래 혹은 다른 악기들과 합주되었기 때문에, 연주 방식도 다양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야금도 변형되어 갔을건데. 특히 19세기 후반에 들면, 합주 형식에서 각각의 악기가 강조되는 독주 형태인 ‘산조’가 생겨나게 됩니다. 가야금 산조가 생겨난 이후, 다른 악기들의 산조도 연주되었답니다. 산조가야금을 한번 살펴보세요. 이전의 것보다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 모습이 눈에 띄지요? 빠른 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하고, 들고 다니기에도 간편해진 겁니다. 이 때문에 산조가야금은 우리 전통 음악의 흐름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시관 앞에 놓인 버튼을 눌러서 각기 다른 현악기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세요. 산조가야금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서 다양한 장식음을 내는 기법을 ‘농현’이라고 하는데요. 음의 높낮이나 떨림의 정도를 달리하여 소리에 멋을 입힘으로써 연주자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요. 박물관을 다 둘러보셨는데요. 애초에 가야금은, 기존 악기의 음율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탄생된 악기였습니다. 따라서 이후로도 계속될 가야금의 변화는 바로 가야금 자체가 지닌 정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정, 정, 정, 하고 오래전 이곳에 울려 퍼졌던 우륵의 가야금 소리는, 앞으로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를 거치며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겁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