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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석굴로 238 (진현동)

석굴암(국보)은 신라 경덕왕 10년에 당시의 재상인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석굴암의 구조는 방형과 원형, 직선과 곡선, 평면과 구면이 조화를 이루며, 특히 벽면을 따라 조각된 38구의 불상과 보살상은 어느 것 하나 걸작이 아닌 것이 없고 전체적인 조화를 통해 고도의 철학성과 과학적인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중앙에는 백색 화강암으로 된 본존불인 여래좌상이 동해를 굽어보고 있으며, 여래좌상의 정면은 문무왕 수중릉인 봉길리 앞 대왕암을 향하고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되고 있다.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수평선 너머의 붉은 해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석굴암에서 해돋이를 감상한 뒤에는 1998년에 개설된 석장로를 따라 토함산에서 동해안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감포와 양북 앞바다에서 청정해역의 신선한 회를 맛보고,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을 함께 둘러보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된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3월~9월]- 09:00~18:00[2월~10월]- 09:00~17:30[11월~1월] - 09:00~17:00
휴무일연중무휴
주차가능
문의054-746-9933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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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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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경주 석굴암 석굴은 경주시 토함산에 위치한 불교 유적으로 불상을 모신 곳입니다.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 시기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지은 곳으로 기록에 따르면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였다고 합니다. 석굴암의 내부 공간은 고대인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땅을 표현한 네모 모양의 전실, 하늘을 표현한 둥근 돔 모양의 주실, 그리고 두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 공간인 비도까지 이렇게 셋으로 구성되어 있죠. 석굴암은 인공석굴로써 종교, 건축, 예술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치형 구조로 만들어 석굴이 주저앉지 않도록 했으며, 습기가 잘 생긴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바닥에 차가운 물을 흐르게 했습니다. 덕분에 석굴암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 숨 쉴 수 있었지요. 또한, 석굴암에는 한국 불교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황금 비율 본존불을 비롯해 10대 제자, 보살, 천신 등 불교 조각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있답니다.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석굴암이지만 지금까지 예술, 종교, 건축적으로 뛰어나게 평가받고 있는 석굴암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거기다가 석굴암은 일출이 정말 아름답다고 합니다. 토함산 위 석굴암에서 일출과 함께 신라인의 뛰어난 건축술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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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시대 때는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이 시기에 인도에서 불교문화가 전파되면서 석굴사원도 함께 전해지게 되었어요. 석굴사원은 바위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수행을 하는 불교 사원을 말합니다. 너무 덥고 뜨거운 인도의 자연조건에 아주 적합한 형태이죠. 인도의 돌들은 많이 단단하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굴을 팠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은 인도의 석굴 문화를 참고해서 석굴암을 만들고자 했어요. 하지만 딱딱한 지형인 우리나라에서는 바위산을 파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에 석굴암은 다른 곳에서 돌을 가져와 쌓는 형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화강암을 하나하나 다듬고 끼워 맞춰 석굴을 만든 후에,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입니다. 아치형 구조로 만들어 사방에서 무거운 흙이 누르는 힘을 골고루 분산해야 한다는 것도 고려하였죠. 이런 형태의 굴은 습기가 잘 생긴다는 문제가 있어요. 굴 안과 바깥의 온도 차이 때문이지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석굴암은 습기와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그 이유는 석굴암 바닥에 차가운 물이 흐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바닥의 차가운 물로 인해 석굴 내부의 습기가 바닥 쪽으로 모여들고, 물방울로 변하여 땅속으로 스며드는 원리이죠. 신라인들의 뛰어난 과학적 지식 덕분에 석굴암은 아주 오랜 기간 보존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실, 주실 등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다 보면 신라인들의 대단함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살펴보러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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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에 들어서면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네모난 모양의 전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실은 땅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주실에 있는 본존불에게 예배를 보는 공간입니다. 전실은 좌우 4구씩 팔부중상을 두고 있습니다. 조금은 무섭게 생기기도 한 팔부중상은 불교의 여덟 수호신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 등 각각 이름도 가지고 있어요. 팔부중상은 부처님을 지키고 불교를 수호하던 신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굴암과 같이 본존불 주위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부처님이나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하던 탑·승탑에도 많이 새겨져 있지요. 전실을 지나면 주실로 이어지는 ‘비도’라는 통로가 나타납니다. 그 통로의 입구를 보면 입을 벌린 모양과 입을 다문 모양의 조각상이 있지요. 석굴암의 조각 가운데 가장 입체적인 금강역사상입니다. 그리고 비도에 들어가면 사천왕상이 보입니다. 사천왕상 많이 들어보셨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신입니다. 이 신들 또한 부릅뜬 눈, 큰 입, 올라간 눈썹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발아래를 살펴보면 마귀를 짓밟고 있는 모습도 보이네요. 무섭게 생긴 얼굴이지만 여러 수호신들 덕분에 마귀를 쫓고 부처님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통로를 통해 이어진 본존불이 있는 주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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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실과 주실을 연결하는 통로인 비도를 지나면 둥근 모양의 주실이 나타납니다. 탄탄한 인공돔 아래,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본존불이 안치되어 있죠. 웅장한 규모이지만 한없이 자애롭고 온화한 표정은 석굴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꼽습니다. 주실의 벽면은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 등 여러 조각상들로 채워져 있으며, 본존불 뒤편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유리벽 때문에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본존불과 함께 신라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11개의 얼굴을 가진 관음보살이 한 조각에 다 표현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렇게 많은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것은 중생의 고통을 두루 살펴 구제하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비롯하여, 본존불, 보살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은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본존불, 더욱 자세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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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의 고요한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본존불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의 석가모니의 모습입니다. 마치 돌에 부처님이 깃든 듯 아름다운 모습이죠. 평안함과 자비로움이 느껴지는 얼굴과 자세, 천 년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눈매와 입은 보기만 해도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게 합니다. 이렇게 본존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뛰어난 비례인데요. 본존불의 얼굴과 가슴, 어깨, 무릎의 가로 길이가 1:2:3:4 비율로 되어 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이 비율은 인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비율인 균제 비례와 거의 흡사합니다. 또한, 석굴의 정중앙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는 본존불은 사실은 중앙에서 조금 뒤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 부분은 전체에 비해 더 크게 조각되어 있죠. 이는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한 것입니다. 본존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뒤쪽 벽면에 조각된 연꽃이 후광처럼 빛나 보인답니다.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하며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앉아있는 본존불. 본존불이 전하는 자비로움을 조용히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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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으로 향하다 보면 석물들이 널브러져 있는 석물 무더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석굴 내부를 해체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끼워 맞추지 못한 석재들이 남겨진 것이지요.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조선의 문화재 복원을 시행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석굴암이죠. 하지만, 일제는 석굴암을 지은 신라 사람들의 과학적 건축 기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복원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굴암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형을 변형시켜 버렸고, 시멘트를 사용하여 석조물을 약화시키고 환기구들을 막았습니다. 또, 석굴암의 습기를 없애고자 신라인들이 흐르게 했던 감로수도 없애서 불상에 결로가 생겼답니다. 일제는 서둘러 방수공사와 배수로 공사를 했지만, 이슬이 맺히고 이끼가 끼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1960년대에 정부에서 석굴암 복원을 시도하였으나 역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요. 결국 석굴암은 외부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유리로 봉인하고 벽 속에 온풍기와 에어컨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습기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석굴암은 우리의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해체 및 복원 이야기와 함께 갈 곳을 잃고 한 쪽에 모여 있는 석굴암의 석물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게 되지요. 완전히 복원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우리의 문화유산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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