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1](/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80%2F3498880_image2_1.jpg&w=3840&q=75)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2](/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81%2F3498881_image2_1.jpg&w=3840&q=75)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3](/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82%2F3498882_image2_1.jpg&w=3840&q=75)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4](/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83%2F3498883_image2_1.jpg&w=3840&q=75)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5](/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85%2F3498885_image2_1.jpg&w=3840&q=75)
조계산 기슭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 1년 도선국사가 선종 9 산 중 동리 산문 선풍으로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하셨다. 반대편 서쪽 산 중턱에는 유명한 승보사찰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 주위로는 수령 수백 년 되는 상수리, 동백, 단풍, 밤나무 등이 울창하고 특히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 또한, 절 앞에 아치형의 승선교가 있는데(보물), 받침대가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어 견고하며, 중앙부의 용머리가 매우 신비롭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도(보물)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절의 하나로 보물 7점 외에도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이 있고,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7m, 넓이 2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800년 전통을 지닌 자생 다원, 송광사에서 선암사를 잇는 조계산 등산로, 수정 같은 계곡물, 울창한 수목과 가을 단풍이 이곳의 멋을 더해 준다. 또한, 선암사 인근에는 지리산과 백운산과 마찬가지로 고로쇠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매년 경칩을 전후하여 약수를 맛볼 수 있다. 선암사 칠전선원은 순천시 송주읍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 선암사에 있는 참선 장소이다.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으로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칠전’이란 선암사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일곱 채의 건물군이다. 선암사 뒤편의 야생차밭에 800년이 넘는 자생 차가 군락지가 있다. 차 배지에서 생산한 야생차는 화개 차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순 자연산 야생차는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친다. 선암사 야생차의 특징을 ‘구수하고 깊은 맛’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차나무가 삼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음지에서 자라 찻잎이 연하고 운무와 습한 기후가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선암사 차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선암사 차밭은 규모가 크지 않아 수확량도 적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용 정보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남자] 순천 조계산에는 천년불심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선암사에서 시작하는 트레킹 코스는 송광사에서 그 끝맺음을 하고 있는데요. 그 길이는 약 12km입니다.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주제로 만들어진 길입니다. 선암사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비로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이것을 성왕 7년인 529년에 청량산 해천사라 하였고, 선암사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신라 헌강왕 1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비보사찰로 창건하면서 선암사라 하였다는 설입니다. [여자] 박전지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성모천왕] 도선아·· 도선아!” [도선국사] “당신은 누·· 누구십니까?” [성모천왕] “나는 지리산의 성모천왕이다. 내 너에게 해줄 말이 있구나.” [도선국사] “어떤 말씀 이십니까? 성모천왕이시여.” [성모천왕] “마한, 변한, 진한이라 불리는 삼한이 하나가 되려면 3개의 절을 창건해야 한다. 그리하면 전쟁이 저절로 종식할 것이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도선아 잊지 말거라·· 반드시 3개의 절을 세워야 한다.” [도선국사] “알겠습니다. 3개의 절을 꼭 세우겠습니다.” [여자] 성모천왕의 말에 따라 도선이 창건한 3곳의 절은 선암사, 운암사, 용암사였습니다. [남자1] “자네, 여기가 왜 선암사라고 불리는지 아는가?” [남자2] “모르는데요?” [남자1] “선암사의 절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 되는 평평하고 큰 돌이 있어. 옛날부터 사람들은 그곳을 선인이 바둑 두던 곳이라 하였고, 그 바위 때문에 선암이라는 절 이름이 생겨났다고 해.” [여자] 천년불심길 끝에 위치한 송광사는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송광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먼저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에는 이 산이 장차 ‘십팔공이 배출되어 불법을 널리 펼 훌륭한 장소’라 송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나무 송자를 십팔공이라 파자하고 광자를 불법 광포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죠. 파자는 한자의 자획을 풀어서 나눈 것을 말합니다. 송광의 또 다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영수는 이 산에 솔갱이가 가득 차 있었으므로 지방 사람들이 이산을 예로부터 ‘솔메’라고 불렀고 그리하여 송광산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송광의 광자는 원래 언덕을 의미하는 강에서 변형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승려 임석진은 ‘송광사사지’를 저술하면서 김영수의 해석을 가장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남자] 선암사에서부터 송광사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볼 것들이 있습니다. 야생차를 시음해 볼 수 있고, 다도와 다례를 배워 볼 수 있는 야생차 체험장도 있습니다, 큰 굴목재와 송광굴목재를 거쳐 가면서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천년불심길의 마지막에 있는 송광사에서 남한 유일의 곱향나무이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를 볼 수 있는데요. 이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남자] 대한민국 보물인 선암사의 승선교는 조선시대 숙종 39년인 1713년에 호암대사가 6년 만에 완성한 다리입니다. 선암사의 부도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바로 승선교입니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 다리의 규모도 큰 편입니다. 승선교의 길이는 14m로 높이 4.7m, 폭은 4m로 되어 있습니다. [여자] 기단부는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습니다. 다리의 아랫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을 연결하여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서 홍예다리라고도 부르는데, 홍예는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남자] 홍예를 중심으로 양쪽 시냇가와의 사이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의 냇돌을 사용하였습니다.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인 효과를 주고 있는데요.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여자] 선암사의 승선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때는 조선 숙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호암대사는 관세음보살의 모습 보기를 소원하여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끝내 볼 수 없었습니다. [호암대사] “백일기도가 다 헛거였구나·· 열과 성을 다해 기도하였건만 관세음보살님을 뵙지 못하는구나·· 더는 살 이유가 없다. 내 여기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으리라!” [여인] “스님! 위험합니다. 거기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그러다 큰일 납니다.” [호암대사] “소승··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데 야심한 시각인데··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라··졌어?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사람이 없어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혹시··· 관세음보살님? 그래 맞아. 관세음보살님이 나를 지키러 오셨구나·· 다시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이시여, 당신을 기리기 위하여 선암사에 원통전을 세웠습니다. 여기 무지개다리인 승선교를 세웠으니 다시 한번 찾아와 중생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여자] 승선교는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하고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다리입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남자] 선암사 대웅전 앞에는 동쪽과 서쪽으로 2기의 석탑이 놓여 있습니다. 높이는 4.7m로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입니다. [여자] 선암사 삼층석탑의 아래층 받침돌은 바닥돌인 지대석과 받침돌의 면석을 한데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면석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덮개돌은 윗면에 경사가 있고, 가운데 부분에 둥글고 각진 3단의 굄을 두었습니다. [남자] 위층 받침돌의 면석 역시 각각의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함께 1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덮개돌은 추녀가 약간 반전이 되어 있는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을 두었고 약간 경사진 윗면에는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처럼 가운데 부분에 둥글고 각진 3단의 굄이 있습니다. [여자]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지만 다른 조각은 없습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이고, 밑면의 받침 수는 층마다 4단이며, 윗면인 낙수면의 정상에는 각진 2단의 받침이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 위에 작은 돌이 놓여 있는데 원래 석탑의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남자] 석탑은 석조탑파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석탑의 재료는 화강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안산암이나 점판암들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석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말엽까지 약 200년간은 목탑의 건립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오랜 목탑의 건조에서 쌓인 노하우를 통하여 석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자]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백제에서 석탑이 건조되었고 그 양식은 당시 유행하던 목탑을 본뜬 것이었습니다. 백제에서는 7세기 초반에 이르러 석재로 목탑을 모방하여 탑을 건립함으로써 석탑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남자] 한편 신라의 석탑은 전탑을 모방하는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전탑은 흙을 구워서 만든 벽돌로 만들어진 탑을 말합니다. 흙을 구워 만든 벽돌은 가볍고 다듬기 쉬워 중국에서는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신라의 석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의 분황사석탑으로 이 탑은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마치 벽돌로 만든 탑처럼 보이도록 제작한 석탑입니다. [여자]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의 탑은 대체로 초기에는 목조탑 양식의 탑이 만들어지다가 각기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발전하였으며, 신라의 통일 이후에는 더욱 세련되고 균형 잡힌 모양의 탑이 만들어졌습니다. [남자] 선암사 삼층 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잘 계승하고 있습니다. 위아래 받침돌의 가운데 기둥 수가 하나로 줄었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도 4단으로 줄어서, 건립 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자] 1986년 8월에 선암사 삼층석탑을 해체 복원하였는데 동쪽에 있는 1층 탑신 내부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청자항아리와, 백자항아리 각 1점과 금동사리탑 수정용기, 사리1과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스님] “선암사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비로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이것을 성왕 7년인 529년에 청량산 해천사라 하였고, 선암사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신라 헌강왕 1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비보사찰로 창건하면서 선암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지요. 그리고 선암사는 고려시대 때에 와서 대각국사 의천이 교단을 크게 늘려 대가람을 이루었습니다.” [여자] “그렇군요. 스님. 스님 대웅전은 어떤 곳인가요?” [스님]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하는 곳입니다.” [여자] “아, 그 인도 왕자였던 분” [스님] “네, 맞습니다. 인도의 카필라 국의 왕자이셨어요. 29세 되던 해에 출가하시게 되었고 35세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지요. 이후에 45년 동안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설법을 전하셨어요. 열반에 드시기 전까지 말이죠.” [여자] “어떤 깨달음이었나요?” [스님]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한 해탈을 얻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일체중생들을 이 괴로움과 고통으로부터 건져내어 해탈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여자] “그렇군요. 자신만이 아니라 일체 대중들도 같이 해탈을 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셨던 거군요. 그리고 그런 분을 대웅전에 모시고 있고요. 그런데요. 스님. 대웅전에 석가모니 부처님만 모신 게 아닌가 봐요.” [스님] “그렇습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같이 봉안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양옆에 문수·보현보살을 모시는 게 기본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자] 대웅전의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고 있는데 이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그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 꼭대기에 부처님이 앉아 자비와 지혜의 빛을 발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남자]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많은 복덕과 반야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습니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행한 이로서 항상 반야 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하고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야경은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입니다,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것을 알리는 것이죠.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일체 보살의 으뜸이 되는 보살입니다.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하는 보살이기도 하죠.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 또는 연명보살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형상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나 크게 나누면 흰 코끼리를 탄 모양과 연화대에 앉은 모양 2종류가 있습니다. 보현보살은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처럼 현세 이익 또는 내세 이익의 측면이 부족하여 신앙으로는 널리 유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여자] 현존하는 선암사 대웅전 상량문에 따르면 선암사 대웅전은 영조 42년인 1766년에 불에 탔고 순조 24년인 1824년에 중창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엄마] “아들! 아들!! 뛰지 마. 여기서 조용히 해야 해!” [아들] “엄마는 맨날! 뛰지 말라고 해! 치” [엄마] 여기선 뛰면 안 되는 거야! 여기는 스님들 공부방이거든?” [아들] “공부 방? 스님도 공부해? 막 국·영·수 이런 거?” [엄마]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같은 게 아니라 스님 되는 공부를 하는 거야. 경전을 공부하기도 하고 참선을 하기도 하는 그런 곳이야.” [아들] “그렇구나. 들어가서 봐도 될까?” [엄마] “우리는 들어갈 수 없어. 들어가도 안 되고, 스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그러니까 이곳에서 뛰거나, 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되는 거야. 스님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하는 거야. 알았지?” [아들] “응!” [엄마] “아들, 다른 곳에 가볼까? 스님들 공부하시게. 자, 가자 ” [남자] 선암사 응향각은 대웅전 서편에 있습니다. 남쪽을 향하여 서 있는 선방입니다. 선방은 참선하는 방을 의미합니다. [여자] 참선과 선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선이 마음의 어떤 특정한 상태를 말한다면 참선이라고 했을 때는 마음의 그 특정한 상태, 곧 자기의 본성을 참구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써 사용됩니다. 일상에서 참선이라는 말은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종교적인 실천 수행을 의미합니다. [남자] 선암사의 응향각은 선암사의 중요한 유구들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의 기능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암사의 응향각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자] 선암사 응향각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담으로 외곽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맨 우측 지붕은 북쪽으로 꺾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쪽은 우미량과 납도리를 사용한 단순한 민도리집인데 천장을 낮게 하고 동자기둥을 높게 하여 서까래와 천장 사이를 드나들 수 있게 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남자] 순천에 있는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이었던 529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과,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 시절에 이르러 엄청나게 번영하여 100동에 이르는 대가람을 이루었던 절입니다. 큰 절이었던 만큼 그 절의 화장실도 특별합니다. [여자] 선암사에는 일명 해우소라고 불리는 화장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화장실이라고 부르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화장실을 변소라고 불렀습니다. 그 밖에도 측간, 칙간, 뒷간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궁궐에 살던 내인들은 화장실을 급한데, 부정한 데, 또는 작은집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선배] “여기다. 여기. 선암사 해우소!” [후배] “선배 화장실이 급하지도 않은데 여긴 왜 와요?” [선배] “선암사에 오면 여길 꼭 와보고 싶었었거든.” [후배] “왜요?” [선배] “특별하니까. 해우소가 무슨 뜻인지 알아?” [후배] “모르겠는데요” [선배]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이야. 선암사는 되게 큰 절이라 해우소도 그만큼 커, 큰 화장실로도 유명해. 그리고 해우소는 절에서 굉장히 중요한 건물 중 하나야.” [후배] “화장실이 중요하긴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건물이라뇨?” [선배] “왜냐하면 이 해우소가 배설의 욕구를 해소하는 기능도 있지만, 농사에 대한 걱정까지 해소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거든.” [후배] “농사요? 화장실이요?” [선배] “해우소는 말이야. 거름으로 쓸 재를 모아두는 헛간인 잿간과 원리가 비슷해. 다만, 해우소는 산사의 지형에 맞게 구조가 짜여 있어. 절의 해우소는 대부분 산비탈 위에 세우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평지에는 법당과 요사채 등 주요 건물을 세우고, 그 끝자락 비탈에 해우소를 두고 있어. 그래서 전면 1층 뒷면 2층의 누각 구조로 돼 있지. 여기 해우소도 그렇잖아.” [후배] “왜 그렇죠?” [선배] “상단부에서 볼일을 보면 하단부의 인분을 꺼내는 부분이 근처의 채마밭 하고 연결이 쉽기 때문이야. 거름으로 쉽게 꺼내 쓸 수 있도록 한 거지. 그리고 이렇게 비탈 구조여야지 통풍과 채광이 잘 되겠지? 산소 공급과 보온효과로 인해 자연 발효가 잘되고 냄새를 막아 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거야.” [후배] “아, 정말 지혜로웠네요.” [선배] “그렇지, 음식을 먹고 배설을 하고, 그 배설한 것으로 거름을 만들고 그 거름으로 다시 음식을 키워내는 전통적인 자연 순환 방식을 이용한 화장실이라니 우리 선조들은 참 현명했어.” [여자] 선암사의 해우소는 정면 6칸, 측면 2칸이고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T형으로 된 건물이라서 전체로는 26간의 규모입니다. 미터로 환산하면 약 47m가 됩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