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해남)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2018년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찰로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 생각한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흥사에는 국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비롯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 비취옥발과 서산대사의 친필, 교자, 신발 그리고 금과 은으로 쓴 불경 등의 유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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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부도밭을 지나서 대흥사에 들어서면 해탈문이 나타납니다 [후배] “선배! 여기요 여기 빨리 오세요.” [선배] “천천히 가자. 그렇게 급하게 안 가도 된다.” [후배] “여기가 해탈문이래요. 그런데 보통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있지 않아요? 신기하게 여긴 천왕문을 지나치지 않았는데 해탈문이 있네요? 해탈문이 뭔가요 선배?” [선배] “음·· 불교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어.” [후배] “산이요?” [선배] “응, 산! 세계의 중앙에 있는 산으로 인간에게 정복된 적이 없는 산이자 신성불의 성소라고 불리는 상상 속의 산이야. 그 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거기에는 불이문이라고 불리는 문이 있어.” [후배] “불이···문이요?” [선배] “그 불이문이 바로 해탈문이야. ‘불이’는 부처와 중생, 선과 악 등 서로 대립되는 것 같은 두 가지가 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서로 다르지 않다는 뜻을 담고 있지. 속계를 벗어나 법계로 들어가는 문이야. 해탈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갈 수 있다는 상징인 거지. 그리고 대흥사에는 천왕문이 없는 이유가 따로 있어.” [후배] “그게·· 뭔데요?” [선배] “자 봐. 사찰을 기준으로 봤을 때 북쪽으로는 영암 월출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송지 달마산이 있어. 그리고 동쪽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쪽으로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어. 이건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서, 동서남북 사방에서 부처의 법을 지키기 위해 세우는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을 세울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천왕문을 거치지 않고 해탈문에 바로 이를 수 있는 거지.” [후배] “아! 그렇구나.” [여자] 2002년에 건립된 대흥사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되어있습니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있습니다. 문수보살로도 불리는 문수는 문수사리 또는 문수시리의 준말로 산스크리트어로는 만주슈리라 불립니다. 만주는 달다,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이 많다, 길상 하다는 뜻으로 합하면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됩니다. 이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 항상 반야 지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자] 보현보살로도 불리는 보현은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보현보살은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협시하는 보살로서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나타내는 보살입니다.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로도 알려져 있는데 흔히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거나 연화대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이 지혜를 맡고 있다면, 보현보살은 자비실천의 덕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보현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사만타바드라’라고 불립니다. [여자] 대흥사 해탈문의 외부 협칸 3면에는 도륜 박태석이 그린 부모은중, 염화시중, 점성가제도가 주제별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2002년 건립 당시 단청과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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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흥사 가허루는 천불전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독특한 문지방을 갖고 있는데 문지방이 직선이 아닌 둥글게 휘어져 있으면서 살짝 공중에 떠 있습니다. 이 문지방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가허루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이 건물은 누각입니다. 누각은 2층에 빈 공간이 있는 건물을 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허루는 2층 누각이 없습니다. 2층 공간이 없는 대신 문지방을 땅에서 띄워 누각임을 나타냈습니다. 가허루의 현판은 호남의 대표적인 서예가라고 할 수 있는 창암 이삼만의 서체로 쓰였습니다. 창암은 스스로 서체를 공부해 일가를 이룬 조선 후기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명필입니다.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 자주적인 민족운동에서 일어난 동국진체를 익히고 또 익혀 자신만의 글씨체인 창암체를 창조했습니다. 창암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통해 동국진체의 진수를 터득했고 창암체를 만들었습니다. 초서에 능했던 창암의 글씨는 꾸밈없고 스스럼없는 천진스러움의 진국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자] 창암은 추사 김정희와 눌진 조광진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알려졌습니다만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추사 김정희의 업적이 너무 크기도 했지만, 관직이나 유명세를 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글씨에만 몰두했던 창암의 고집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에게도 추사 김정희와 관련한 일화가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자1] “추사 김정희가 오늘 여기를 지나간다고 하던데 창암 선생님 글씨를 한번 보여주는 게 어떨까요?” [남자2] “그래요. 선생님 글씨야말로 추사 김정희의 견주는 글씨 아닙니까?” [남자1] “저기 오시는 저분이 추사인가 봅니다. 어서 가 봅시다.” [남자2] “어떻습니까? 추사 선생님. 창암 선생님의 글씨가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추사 김정희] “흠···시골에서 글씨로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네요.” [남자2] 뭐··라구요?” [여자] 소식을 들은 창암의 제자들이 수모를 당한 스승을 대신하여 추사를 두들겨 팰 작정으로 몰려나가려고 하자 창암은 제자들을 막아서며 말렸습니다. 그 후에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제주도 유배에서 돌아오던 추사는 창암의 집을 찾았습니다. [추사 김정희] “이리 오너라” [청지기] 무슨 일이십니까?” [추사 김정희] “이곳이 창암 선생이 계신 곳이 맞는가?” [청지기] “예·· 맞긴 맞는 곳이기는 한데··· 창암 선생님은 안 계십니다.” [추사 김정희] “어디 출타하셨는가?” [청지기] “그게 아니라·· 돌아··가셨습니다. 몇 해 전에··” [추사 김정희] “뭐·· 뭐라?” [여자] 창암은 고인이 된 후였습니다. 이에 추사는 명필 창암 완산이공삼만지묘 라는 묘표를 쓰고 다음과 같은 묘문을 썼습니다. [추사 김정희] “여기 한 생을 글씨를 위해 살다 간 어질고 위대한 서가가 누워있으니, 후생들아 감히 이 무덤을 훼손하지 말지어다.” [여자] 창암이 남긴 가허루의 현판 글씨는 단정합니다. 가허루 안쪽, 천불전에 있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과 비교했을 때 대비가 되는 것이 특징이죠. 창암은 단정한 가허루의 글씨를 통해 천불전의 글씨와 조화를 추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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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흥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줄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둔사지’ 기록에 의하면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현재 북원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백설당, 청운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종무소 등이 하나의 군을 이루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남원의 오른편에는 표충사와 부속건물, 성보 박물관이 있고 그 뒤편에는 대광명전이 또 다른 별원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중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의 중심 불전입니다. 천불전은 조선시대 순조 11년 1811년에 화재로 탔으나 2년 뒤에 초의 선사의 스승인 완호 대사와 제성 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습니다. 천불전에는 1817년에 조성된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천불상이 이곳에 봉안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여자] 천불은 다불사상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걸쳐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으로 화장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경주에서 조성된 이 천불상은 2척의 배에 나뉘어 실려 1817년 11월 18일 경주 장진포항에서 지금의 대흥사로 불리는 해남 대둔사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거친 풍랑을 맞이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하다가 일본의 축전 대도포에 표착하게 됩니다. 이때 이 배에는 768여 구의 천불상이 실려 있었습니다. [남자1] “여기·· 웬 배가 있지?” [남자2] “빨리 배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뭐가 있는지 궁금하니까” [남자1] “아니 이게 다 뭐야? 웬 불상들이 이렇게 많지?” [남자2] “이건 틀림없이 절을 짓고 이 불상들을 모시라는 거야. 틀림없어” [남자1] “우선은 현감님께 알리자고!! 서둘러” [여자]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서둘러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려 하였습니다. [옥불 목소리] 우리는 조선에 있는 해남 대둔사로 가야 한다. 그러니 이곳에 봉안하면 안 된다!” [현감] 대체·· 왜 매번 같은 꿈을 꾸는가? 여봐라 조선에 있는 대둔사라는 절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오게 하라.” [여자] 대도포 현감의 꿈에 옥불이 현몽하여 자신들이 봉안될 곳인 대둔사로 보내 달라 요구하였고, 1818년 7월 14일에 지금 대흥사로 불리는 대둔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현감] “불상들을 대둔사로 보내라. 그러나 그냥 보낼 순 없지. 불상 밑에 일본의 일자를 뜻하는 한자를 새겨 보내도록 하여라.” [여자] 천불전에 봉안된 옥 불상은 근세에도 그 영험을 보였는데 처음에는 부처님과 스님들이 입는 옷인 가사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이 절을 다니던 불자들의 꿈에 옥불이 나타나 여러 차례 가사 불사를 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서둘러 가사를 만들어 입혀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천불전은 유명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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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흥사의 대웅보전은 대흥사의 중심 법전입니다. 대흥사의 북원에 자리하고 있어요.” [여자] “선생님, 그런데요. 보통은 대웅전이라고 그러지 않나요? 여긴 왜 대웅보전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남자] “음·· 대웅전은 보통 사찰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주불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지요. 대웅전에는 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같이 협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대웅보전은 대웅전을 격을 높여서 부르는 거예요. 대웅전과 대웅보전의 차이는 협시불에 있죠.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양옆에 아미타 부처님과 약사여래 부처님을 같이 봉안하고 있어요.” [여자] “아! 그래요?” [남자] “부처님을 신이라고 한다면 보살은 초인 정도로 설명할 수 있어요. 대웅보전에는 그런 신이라고 볼 수 있는 부처님이 2분이 더 계시니 대웅보전이라고 격을 높여서 부르는 겁니다. 저기 수미단 쪽을 보세요. ” [여자] “수미단이요?” [남자] “불상이 놓여 있는 부분을 수미단이라고 부르는데요.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수미산을 형상해 놓은 단을 말하는 거예요. 저기 목조로 만든 삼세불이 안치되어 있죠?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여자] “선생님 덕분에 대웅전과 대웅보전의 차이를 알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남자] “별말씀을요. 다른 곳도 둘러볼까요?” [여자] 대흥사 대웅보전 중앙 불단 좌우로 20세기 초 대흥사 불화 조성에 참여한 명응환감, 예운상규와 그의 권속들이 그린 삼장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감로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장탱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탱화로 지장탱화가 발전되고 확대된 불화입니다. 이 삼장보살의 명칭이나 도상이 어디에서 유래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지장보살의 신앙이 더 심화되고 확대되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숭천신앙과 지지신앙·망인낙지천도 신앙을 수용하여 소박한 삼계 우주관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남자] 신중탱화는 많은 호법신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의 재래 신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재래 토속신앙의 불교적 전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신중탱화는 그 어떤 탱화보다 고유의 특성이 강한 탱화라 할 수 있습니다. [여자] 칠성탱화는 칠성을 불교의 호법선신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하여 묘사한 불화입니다. 원래 불교에서는 칠성신을 신중의 하나로 보고 신중탱화 속에서만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칠성에 대한 신앙적 기능이 조선 초기부터 강화되면서 독립된 신앙 형태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신중탱화에서 분화된 별개의 칠성탱화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남자] 감로탱화는 조선시대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 의식에 사용된 불화입니다. 의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굶주린 아귀에게 감로를 베푼다는 뜻에서 감로도라고도 합니다. 감로는 원래 천신의 음료입니다. 감로는 아귀의 목구멍을 개통 시켜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습니다. [여자] 현재 대웅보전은 침계루의 걸린 대웅전중창상량문과 대웅전중건기를 통해 1667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고 1899년 북원 일곽의 화재 이후 중건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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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1] “여긴·· 다른 곳이랑 다르게 좀·· 무섭다.” [학생2] “왁!” [학생1] 뭐야! 놀랬잖아!” [학생2] “놀라긴! 죄지었냐?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지” [학생1]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고!!” [학생2] “명부전에 와서 그렇게 놀라니까 하는 소리지.” [학생1] “자기가 놀라게 해 놓고선! 그나저나 명부전? 명부전이 뭐하는 곳이야?” [학생2] “명부전은 유명계의 심판관이 시왕을 봉안하고 있는 곳이야. 다른 말로는 시왕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학생1] “시왕? 그게 뭐야?” [학생2] “시왕은 사후 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가리키는 말이야. 흔히 접하는 염라대왕도 시왕 중 한 명이야.” [학생1] “아 그렇구나.” [학생2] “불교에서는 중생이 사후에 육신을 벗어나서 자신의 전생 업보를 심판을 받는다고 해. 죽은 날부터 49일까지 7일 단위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고, 100일째 되는 날 소상과 대상을 당할 때마다. 그 열명의 심판관에게 차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해.” [학생1] “어째 좀 으스스하다.” [학생2] “하지만 심판관만 있는 건 아니야. 보통 명부전에는 지장보살도 같이 있어.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어서 지장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어.” [학생1] “지장보살?” [학생2] “고통을 받는 영혼들을 구해주는 보살이시지. 그곳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학생1] “아! 여기를 마냥 무서워할 건 아니네! 그렇지?” [학생2] “그러니까 친구야. 착하게 살아라! 응?” [학생1]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해! 웃겨 정말 그나저나 지금 몇 시야? 야! 집합 시간 다 됐어. 빨리 가자!” [남자] 대흥사의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좌우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의 삼존을 중앙 불단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육도라 불리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하늘, 인간 세상의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지옥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그곳에 들어가는 중생을 못 들어가도록 막는 역할을 하고 혹은 지옥 속에서 고생하는 중생을 천상이나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자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여 대표적인 불교 신앙 중의 하나로 유포되었습니다. 특히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후손들에 의해서 지장보살은 널리 신봉되었습니다. 지장보살은 육도윤회를 심판하는 명부의 구세주로 등장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명부전의 주존불로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여자] 지장보살은 그 신력과 자비와 지혜와 변재가 불가사의한 보살이며, 모든 악업에서 해탈하는 보살로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보살입니다. 신라시대 이후로 지장보살 신앙은 가장 일반적인 신앙으로 신봉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신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 대흥사의 명부전은 1899년 북원 일곽의 건물들이 불이 난 뒤에 20세기에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1901년 지장탱화 봉안과 함께 시왕과 명부 권속들이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삼존을 중앙 불단에 봉안하였고 좌우로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과 판관·녹사·사자 등 여러 명부의 권속들을 배치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건축 양식상 주심포식 맞배집으로 특별한 특징은 없으나 20세기 초 명부전 양식의 한 예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습니다. [지장보살] 나는 지장보살, 악도에 떨어져서 헤매는 중생들과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나 자신도 성불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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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흥사 산신각과 청운당 사이에 하나의 탑이 서 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탑은 신라시대 자장 법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 즉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합니다. [여자] 사리는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여겨지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뜻합니다. 이 사리는 여러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형태에 따라 전신사리와 쇄신사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신체 자체로 볼 때는 전신사리이고 다비, 즉 화장한 뒤의 신골은 쇄신 사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쇄신 사리는 세골 내지 흰 분말의 경우가 있으나,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사리 신앙이 더욱 신비화되어 둥근 구슬의 형태로 된 영골·영주로 인식되었습니다. 즉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에 이르기까지 다비 후의 유신이 사리로 신봉되었습니다. 보통은 불사리를 으뜸으로 말하고 있으나 그 외 수행자의 유신인 고승의 사리 역시 신봉되어 탑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남자] 부처님의 신골을 진신사리, 불경을 법사리,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라 하여 구분하고 승사리를 봉안하는 곳도 부도라고 하여 불탑과 다른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의 열반 뒤 그 제자들은 인도의 장례법에 따라 유신을 다비하였고 84두나 되는 많은 사리가 출현하여 이를 8개국에 분배하여 봉안하였습니다. [여자] 우리나라에서도 사리 신앙은 매우 성행하였는데 불상에 대한 신앙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대한 신앙이 매우 강하였습니다. [남자] 대흥사 3층 석탑은 신라 전형의 양식을 그대로 전수한 매우 균제 되고 단아한 석탑입니다. 2개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인데, 정상에는 큰 머리 장식 받침 위에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인 복발과 연꽃 모양의 장식인 양화, 바퀴 모양의 장식인 보륜 등이 올려져 있습니다. [여자] 대흥사의 3층 석탑은 기단의 가운데 기둥 수가 하나로 줄어들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가 4단인 점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대흥사 3층 석탑은 대둔산 정상 부근에 세워진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이 서남단 지방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흥사 3층 석탑은 1967년 1월 해체 수리 때 상층기단 내부의 자연석 판석 위에서 높이 12cm, 무릎 너비 7.5cm의 동조여래좌상 1구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