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덕수궁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 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덕수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동시에 공원화가 진행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었다. 1946~47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후 덕수궁의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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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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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대 고궁 중 하나인 덕수궁은 1897년에 선포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덕수궁은 당초 세조의 장손이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으로 처음부터 궁궐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 즉, 정릉동 행궁으로 삼으면서부터입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고 불렀습니다. 경운궁은 애초에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궁궐들을 대신하여 거처하던 곳이었기에 창덕궁과 창경궁이 중건되면서 자연스럽게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압력을 피해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이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것이죠.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중국의 연호가 아닌 독자적인 연호 광무를 사용하고, 군주의 칭호를 국왕에서 황제로 격상시켰습니다. 나라의 이름도 ‘대한제국’으로 바꾸었지요. 이렇게 황제국다운 국가 체제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경운궁도 황궁으로서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1904년 대화재로 인해 경운궁은 함녕전, 석어당 등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타게 되었으며,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긴 을사조약과 고종의 강제 퇴위를 겪으며 경운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은 퇴위한 황제가 덕을 누리며 오래 살라는 뜻에서 ‘덕수’라는 이름을 올렸고, 경운궁의 이름도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덕수궁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긴 곳입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궁궐 덕수궁을 거닐다 보면 저마다 사연을 안은 유서 깊은 전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쁜 돌담길도 있는 덕수궁에서 파란만장한 근대사의 자취를 느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