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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에 비해 그 규모와 격식 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했다. 또한 광화문은 담장 끝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에 세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하였다.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때를 알리는 데 사용하였다. 이처럼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법궁이라는 점은 광화문을 비롯한 성문의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궁의 문들은 낮은 단 위에 문을 세우지만 경복궁의 문은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을 내서 마치 성곽의 문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 광화문은 그중에서도 홍예문을 셋이나 내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광화문이 법궁의 정문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원래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궁성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부서지고 석축은 탄흔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서다.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재건한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재건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추어, 그 결과 3.5도가량 본래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원래의 광화문 자리에서도 14.5미터가량 뒤로 물러나 지금의 자리에 서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형을 잃어버린 광화문을 복원하고자 2006년부터 광화문 철거작업을 시작해 3년 8개월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0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화강암으로 육중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이층의 문루를 얹어 멀리 조망하기 좋을 뿐 아니라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기단에 있는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은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위엄을 과시한다. 돌로 만든 기단 위에는 흙을 구워 벽돌처럼 만든 ‘전돌’로 나지막한 담을 둘렀는데, 여기를 장식한 팔괘 문양은 조선조 궁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1월~2월/11월~12월] - 09:00~17:00 (입장마감 16:00) [3월~5월/9월~10월] - 09:00~18:00 (입장마감 17:00) [6월~8월] - 09:00~18:30 (입장마감 17:30)
휴무일매주 화요일※ 단, 화요일이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과 겹칠 경우에는 개방하며, 그 다음 첫 번째 비공휴일이 정기휴일
주차가능 (약 240대)
문의02-3700-3901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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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여유
  • 화여유
  • 수여유
  • 목보통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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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광화문이 있던 자리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통치하기 위한 행정체제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총괄하는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해 식민지화를 시작합니다. 1916년, 일본은 조선인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옮기고, 담장과 건물을 허물어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웁니다. 1926년 완공된 조선총독부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경복궁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건물이 됩니다. 1945년 광복후의 서울에는 미군이 들어와, 이 곳을 미군정청으로 사용합니다. 귀국한 김구주석, 이승만 박사 등이 이 곳에서 미군들과 정부수립에 관한 회의를 이어갔고,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남한정부는 이곳을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행정부처가 있는 중앙행정관청으로 사용했습니다. 1986년부터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하여, 행정부처가 이전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건물을 해체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6년 11월에 완전 철거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중앙청이 철거되던 모습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중앙청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원래 주인인 광화문과 경복궁이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아온 광화문은 지금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재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가이드는 한국관광공사 김경희 님의 목소리 재능 기부로 녹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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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내관]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추는 광화문(光化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복궁 남쪽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왕실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문을 기준으로 안 쪽은 경복궁, 바깥쪽은 ‘육조거리’라 불리는 한성부(지금의 서울시청 역할을 하는 부서)의 영역과 백성들이 생활하는 종로거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나다니는 중심에 있는 광화문은 다락위에 종과 북을 달아서 시간과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김상궁] “문 앞에 해치(해태) 한 쌍이 마치 ‘나는 정의를 수호한다!’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김내관] “그렇지요? 아마 이 해치가 육조거리에 있는 관리들과 임금님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지켜보고 있다-- 는 의미로 세운 거라 그런 느낌이 들 거에요.” [김상궁] “해치가 양 옆에 있으니 든든하네요.! 와- 김내관! 나 이 문 처음 지나봐요! 천장에 봉황이 그려져 있네요!” [김내관] “정말 멋지네요! 원래 광화문은 중국에서 온 사신이나 왕실가족이 공식적으로 행차할 때 이용하는 문이지요. 저도 옆 문으로는 많이 다녔는데, 가운데 문으로 들어와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참고로, 왼쪽 문은 낙귀부서(洛龜負書)로 거북이가 그려져있고, 오른쪽 문은 하마부서(河馬負書)로 말이 그려져 있어요 [김상궁] “광화문이 2010년에 여기로 돌아오기 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데, 당연히 멋지게 단장해야지요.!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건물에 밀려서 건춘문 근처로 갔다가, 한국 전쟁 때 폭격을 맞아 없어졌지요. 1968년에야 다시 복원을 했지만, 1990년대에 중앙청으로 불리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없어지고 나서야 원래 자리로 오게 된 거잖아요. [김내관] “그래서 복원할 때 추녀마루에 잡상(어처구니)도 7개 딱! 올리고, 뒤로 보이는 북악산의 능선과 어우러지는 미적 요소도 딱! 살려놨지요! 예나 지금이나, 이 광화문이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벅차 오르는지, 다들 알고 있을거에요!” [김상궁] “어머, 웬일로 나랑 통했네요! 그러면, 이제 안에 가서 입장권 끊고 본격적으로 입궐해보자구요!”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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