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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국보로 유명한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석탑은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다. 목조건물의 가구(架構)를 모방하고 있으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돈된 형태에서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한 기풍을 풍겨준다. 초층탑신(初層塔身) 4면에는 당(唐)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百濟)를 멸한 다음, 그 기공문(紀功文)을 새겨 넣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이다. 이곳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정림사명(定林寺銘)이 들어 있는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예능 에서 멤버들이 저녁 식사를 두고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본뜬 ‘인간 탑 쌓기 3종’ 미션을 수행한 곳이다. 인근에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국가유산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정림사지 5층석탑]- 상시 개방 [정림사지 박물관]-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휴무일[정림사지 5층석탑]- 연중무휴 [정림사지 박물관]-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주차가능요금(무료)
문의정림사지박물관 041-832-2721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여유
  • 토혼잡
  • 일혼잡
  • 월여유
  • 화여유
  • 수보통
  • 목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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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림사지는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시기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나 특히 백제시대와 고려시대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에 중건되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조각에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는 글이 발견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곳이 정림사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후 우리는 이 절터를 정림사지로, 탑을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부르게 되었지요. 정림사지는 백제의 사찰 양식인 1탑 1금당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주요 건물인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에 이르는 중심축선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있습니다. 또한, 건물을 복도로 감싸고 있는 배치를 하고 있지요. 특이한 점은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 정림사지에는 각종 전각이 있었던 터, 백제 때 세워진 5층 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발굴 당시 출토된 유물들은 정림사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요. 백제 사비시기의 대표적인 사찰 터인 정림사지는 백제시대의 가람배치와, 석탑, 건물 등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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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림사지에 있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 사비시대의 석탑입니다. 목탑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는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요.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기존 나무로 탑을 만들었던 방법에서 벗어나 돌을 활용하여 지어진 탑입니다. 백제의 장인들은 목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재를 택했는데요. 목재는 불에 잘 타는 데에 반해 석탑은 영구적인 사용을 기대할 수 있으며, 또 화강암은 우리나라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 때문이지요. 결국, 시간과 재정을 줄일 수 있는 최상의 재료가 석재였던 것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석탑은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습니다. 특히 탑이 주는 안정감과 비례감이 인상 깊게 느껴지실 텐데요. 이는 밑 부분이 넓고 위로 갈수록 약간 좁아지는 기둥을 통해 알 수 있지요. 또 2층 이상의 탑신은 위로 갈수록 높이가 크게 줄고, 너비도 비율에 따라 가지런하게 좁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목탑의 건축양식을 수용했음을 알려주는 배흘림기법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배흘림기법은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드는 기법이죠. 탑신의 네 귀퉁이에 세워진 기둥이 배흘림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뼈아픈 이야기도 새겨져 있어요. 탑 1층에 새겨진 한자가 보이시나요? 이 글자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것을 기념하는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은 것입니다. 백제의 중심사찰인 정림사에 있는 탑에 이런 글귀를 새겨 넣었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죠. 이처럼,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아픈 역사의 흔적을 안은 채 아름다운 모습으로 한결같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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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단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기단이란 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으로 사찰, 궁궐 유적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보통 기단이라 하면 돌로 된 기단이 떠오르실 텐데요. 백제에서는 돌이 아닌 기와로 쌓은 기단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기와를 가로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양, 부채 모양, 기와를 수직으로 세워 서로 겹치지 않게 연결한 모양 등 다양한 형식이 있었지요. 이렇게 기와로 쌓아 올린 기단을 와적기단이라고 합니다. 이 기단 양식은 고구려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고, 신라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기단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주로 백제의 영토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곳 정림사지를 비롯하여 왕흥사지, 관북리 유적, 왕궁리 유적 등이 있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와적기단 양식이 백제에서 시작되고 완성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독창적인 기단 양식은 통일신라와 일본에도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사원뿐만 아니라 관아건물에까지 와적기단이 조성될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이렇듯 국내적, 국제적으로 영향을 끼친 백제의 와적기단은 기단의 장식적인 미를 더하였고, 폐기와를 재활용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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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는 석조불상은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상의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모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이 신체에 비해 크고 균형이 맞지 않는 까닭도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른쪽 팔과 왼쪽 무릎은 완전히 없어졌으며 남아있는 부분으로 미루어 보아 신체가 왜소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왼팔이 가슴 쪽으로 올라간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왼손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권인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적인 손 모양으로, 불법으로서 모든 것을 감싼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한 8각 대좌도 눈에 띄는데요. 대좌는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대이지요. 상대, 중대, 하대로 이루어졌는데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을, 중대에는 큼직한 눈 모양을,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표현하였습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다가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불상이 있는 강당 자리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고려시대에 절을 중창할 때 만든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지요. 비록 세부적인 형체가 잘 남아있지 않은 불상이지만, 고려시대에도 정림사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림사지 석불좌상은 의미가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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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 21-4

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