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은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이다. 그러나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바로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어 독립문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되새겨 보는 역사 여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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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서쪽 문은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迎恩門)’으로, 사신들이 궁궐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머무른 숙소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1896년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 박사는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문을 건립할 것을 발의하는데, 자주독립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자 합니다. 이에 동의한 고종황제와 뜻있는 지사들의 도움을 받아 189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897년 11월에 독립문을 세우게 됩니다. 독립문은 기존의 조선식 건축과는 완전히 다른, 서양식 건축물인데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설계자는 서양인이었지만, 직접 만든 사람이 조선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조선의 성벽을 쌓는것처럼 쌓았다고 합니다. 건축가와 만든이에 대해서는 서재필 자서전의 기록과 『경성부사(京城府史)』의 내용이 달라,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독립문의 높이는 약 14.28m, 너비 11.48m로 문 안쪽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독립문에서 제일 유명한 부분은 바로 현판인데요, 앞과 뒤에 ‘독립문’이라는 한글과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현판의 양 옆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지요. 그런데, 이 현판을 쓴 사람이 바로 친일파로 유명한 이완용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완용은 당대에 글씨를 잘 쓰는 문인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가 을사오적이 되기 전에는 실제 독립협회를 후원하는 청년귀족이었는데, 독립문이 청나라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문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후원했을 것이다 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글씨를 잘 쓰는것으로 유명했던 김가진이 썼다는 의견이 있어, 독립문 현판에 대한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독립문이 있는 곳은 현재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 곳에는 청나라사신들이 머물던 ‘모화관 (慕華館)’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 모화관 앞에는 ‘일각문(一脚門)’ 이라는 문이 있었는데, 일각문의 기둥이 현재 독립문 앞에 있습니다. 독립문을 세울 당시에도 이 앞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요, 1934년에 남쪽으로 옮겨 놓았다가 1979년에 성산대로가 개통되면서 독립문과 함께 원래의 위치에서 옮겨져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