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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

숭례문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있는 조선 도성의 남쪽 정문으로 사대문 가운데 남쪽에 위치해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서울의 상징이자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서울의 사대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현판 글씨가 세로로 쓰인 것이 특징이다. 조선 태조 5년(1396)에 최초로 축조되었고 1398년 2월 중건되었다. 성종 10년(1479)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피해를 당하지 않고 오랜 세월 한성의 대문 역할을 해왔다.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으로 전투의 장소가 되었으며 같은 해 일본 황태자 방한 당시 황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는 핑계로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이 헐린 비극의 역사도 있다. 2006년 연결된 성곽 없이 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을 2006년 복원 공사해 원래의 모습을 재현했다. 2008년 2월 10일 화재로 인해 1층 문루 일부가 불에 타고 2층 문루가 소실됐다. 수습 작업 및 복구를 위한 각종 연구를 거쳐 2013년 5월 4일 복구 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에게 다시 공개되었다.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이 숭례문 편액을 썼다고 한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09:00~18:00 (입장 마감 17:50)
휴무일매주 월요일
주차불가능
문의02-779-8547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토혼잡
  • 일혼잡
  • 월여유
  • 화여유
  • 수여유
  • 목보통
  • 금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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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대본 보기

    600년 도읍지 한양의 정문 조선의 태조는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도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남쪽에 위치한 정문을 ‘남대문’이라고 불렀는데요. 정식이름은 ‘예의를 숭상하는 문’이라는 의미의 ‘숭례문’ 입니다. 숭례문은 조선의 왕이 공식적으로 행차할 때 이용하는 문이었고, 전국의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4개의 대문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문이었습니다. 세로로 걸린 현판은 조선시대에 일반적인 현판들과 방향이 다른데요, 숭례문을 지을 당시,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남쪽에 있는 관악산은 불기운이 강해 화재를 입을 수 있으니, 화재를 막기 위해 불타오르는 모양의 한문인 ‘숭(崇)’과 음양오행사상에서 불을 의미하는 ‘예(禮)’를 세워 달아 더 큰 불로 불길을 막자”는 의미로 세워서 단 것입니다. 색이 바랜 성벽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은 1907년 군대 강제 해산 발표에 격분한 대한제국 군인과 일본군의 치열한 교전 흔적을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대식 도로를 만들면서 한양도성에서 이어지는 부분이 훼손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큰 화재로 지붕과 2층의 문루가 타버려서, 복원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조선시대에 지어졌던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습니다. 성문을 수호하고 있는 황룡과 청룡을 지나오면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현재의 서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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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변경금지)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