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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공원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공원3길 54

학성공원은 1913년 추전 김홍조가 이곳의 개인 사유지 23,141㎡을 사들여 흑송, 벚나무, 매화나무 등을 심으며 공원으로 만든 후 개인 소유로 하지 않고 당시 울산면에 기증하면서 오늘날의 학성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공원 내에는 봄편지 노래비, 충혼비, 김홍조 선생비가 있으며, 공원에 벚꽃이 만개하면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공원 위에는 배드민턴장이 있고 세 군데의 광장이 있으며 공원의 허리를 빙 둘러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벚꽃이 필 때는 정말 분위기가 좋아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가을에는 단풍 나뭇잎이 떨어져 쌓이면서 또 다른 정취를 뿜어내는 곳이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무일연중무휴
주차가능요금 (무료)
문의울산 중구청 공원녹지과 052-290-4423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혼잡
  • 토혼잡
  • 일여유
  • 월여유
  • 화여유
  • 수보통
  • 목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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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대본 보기

    이번에는 울산 지역 역사에서 아픈 손가락처럼 남아 있는 문화재, ‘울산 왜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다른 유적지와 달리 특별히 ‘아프다’고 이야기한 까닭은 이곳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이웃나라 일본 양식의 문화 유적이기 때문입니다. 시루를 엎어 놓은 형태라고 하여 ‘증성’, 또는 섬처럼 보이는 산에 있다고 해서 ‘도산성’, 그리고 왜가 쌓았다고 하여 ‘왜성’이라고 불렀던 이 성은 16세기 말 동아시아의 최대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임진왜란에 때 쌓아 만들었습니다. 1597년 8월 일본의 도요토미 정권은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다시금 조선을 침공하여 정유재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왜군은 남해안의 군사 주둔과 조선·명나라 연합군을 막기 위해 많은 성을 쌓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울산 왜성입니다. 울산왜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설계하였으며, 성벽에 필요한 돌은 병영성과 울산읍성을 헐고 부순 것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가토 기요마사를 따라 다닌 승려 게이넨(慶念)의 조선일기 기록에는 왜성을 쌓기위해 많은 울산사람들이 동원되었다는 내용이 잘 나와있습니다. 한편, 정유재란으로 조선을 재차 침입했던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으로 서해진출에 실패하고, 북상했던 병력이 패하면서 영호남 해안으로 후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후퇴를 지켜보던 조선·명나라 연합군은 왜군의 군수보급의 요충지이자 침략의 교두보인 울산왜성을 포위 공격하게 됩니다. 이 전투가 그 유명한 도산성 전투, 울산왜성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명나라 연합군은 열심히 싸웠지만, 서생포와 부산포에서 바다를 통해 구원한 왜군의 지원으로 결국 많은 부상자와 전사자를 남기고 회군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용맹함을 발휘한 조선군은 개전 초기 울산 왜성의 외부 성벽을 돌파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크고 작은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울산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울산왜성의 맞은편에는 충의사가 세워져 울산의사 242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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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구강서원

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45 (반구동)

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