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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루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금성관길 13-20 (금계동)

정수루는 나주에서 편찬된 여러 지지류에 ‘관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나주의 관아문이다. 정완루라고도 불리었다.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1753년 5월 29일~1755년 2월 4일 재임)가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수루로 적혀있다. 현재의 건물은 구조나 양식 등으로 보아 19세기에 크게 중수된 건물로 여겨진다. 이곳을 지나면 나주목 관아인 동헌으로 들어가며 외동헌과 내동헌이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는 내동헌인 목사 내아만 남아 있다. 정수루 주변으로는 목사를 보좌하던 향리들의 집무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나주목의 궁실인 나주 객사 금성관과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 등의 건물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아래로 사람과 차량이 왕래하였으나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지금은 우회시키고 있다. 바로 인접하여 금성관이 있다. '사매기째깐한박물관'이 직선 거리로 150m에 위치해 있다.

이용 정보

문의061-339-8615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3. 정수루

    2:00
    해설 대본 보기

    정치를 바로 하고 백성을 사랑하라 정수루 나주 여행의 시작점은 중앙광장입니다. 금성관, 목사내아, 목문화관이 자리한 나주의 핵심이자 중심이기 때문이죠. 중앙광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정수루가 반깁니다. 웅장하게 서 있는 이 2층 누각은 나주의 관아문이었습니다. 이곳을 통과해야 나주목의 관아인 제금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금헌은 일제강점기에 헐리고, 현재 복원을 위해 발굴 중입니다 정수루는 김지남(1559~1631)이 남긴 용계유고(龍溪遺稿) 권1의 시 ‘나주에 새로운 집을 지었다. 관찰사 유천의 운에 따라 지어 우복룡 목사에게 보여주었다’를 통해 목사 우복룡이 재직하던(1602년10월부터 1605년1월)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정수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의 양 측면만 벽체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누각 2층에는 커다란 북이 놓여 있습니다. 관리들은 정수루를 통과하면서 갓끈을 새로 매고 의관을 단정히 했습니다. 정수루 앞에 왕을 상징하는 금성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단정한 갓끈과 의관은 넓은 의미로 바른 정치와 열린 정치를 의미하고, 북은 백성을 향한 애민정신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정수루는 단순한 문이 아닌 임금을 대신해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의 자세를 일깨워주는 청백리의 문이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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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금성관길 13-8 (금계동)

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