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산기념관

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길 11

백산기념관은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립된 역사기념관이다. 안희제 선생이 설립한 백산상회와 백산무역주식회사는 독립운동자금을 조달·지원하고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을 연결하는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기념관에는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 백산상회의 역사 등을 소개하는 다양한 전시 자료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애국정신과 민족 자주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 평일 10:00~18:00- 주말 10:00~17:00
휴무일매주 월요일 / 설·추석 연휴 / 법정공휴일 (단, 3·1절과 광복절은 개관)
이용요금무료
문의051-600-4067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혼잡
  • 토혼잡
  • 일여유
  • 월여유
  • 화여유
  • 수보통
  • 목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백산 안희제 선생은 1885년 8월 4일 경남 의령군의 소지주 향반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두뇌가 명석하여 10살 때는 유교의 핵심인 사서오경(四書五經)에 통달하였고, 17살 때는 마을 백일장에서 장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스무 살까지는 한학(漢學)을 공부하였으나, 1905년에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간섭하자,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신학문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현재의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경제과에 1기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보성전문학교는 설립자 이용익이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러시아로 망명한 후 급사하고 (1907년), 그의 손자 이종호가 학교를 운영하였는데, 재정난을 겪으면서 학교는 공부에 전념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906년 급우 23명과 함께 현재 서울 양정고등학교인 ‘양정의숙 경제과’로 전학하여 1910년 졸업하게 됩니다. 한일병합으로 나라가 망하자, 1911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안창호, 이갑, 신채호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과 비밀연락기지 구축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귀국하여 백산상회를 설립합니다. 1914년, 고향의 논밭을 팔고 영남지방의 뜻있는 부자들을 설득하여 부산 동광동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계시는 이 백산기념관이 바로 백산상회였지요. 처음에는 곡물, 면포, 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개인 상회로 출발하였지만, 1919년에 경주 최부자인 최준을 비롯하여 영남의 대지주들을 모아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장하였습니다. 1919년 7월 영업을 시작한 백산무역주식회사는 부산에 본점을 두고 국내에 18개 중국에 3개의 지점을 운영하였습니다. 백산무역주식회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무역회사였으나, 실제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비밀연락기지를 제공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의 비밀본부로서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을 국내로 들여와 비밀리에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일제의 감시와 사찰이 심해지고, 심각한 재정난이 겹치면서 설립 14년만인 1928년 1월에 문을 닫게 됩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백산 선생의 교육구국운동부터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 계몽주의로 전환하고 학교설립과 장학사업 등을 주도하게 됩니다. 고향인 의령에는 의신학교와 창남학교를 세우고 부산에서는 윤상은 선생과 함께 구명학교를 세워 2년간 교장으로 재임합니다. 구명학교는 지금의 구포초등학교의 전신이지요.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차세대 지도자 양성이 시급함을 인식하고 1919년 ‘기미육영회’라는 장학재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매년 10명씩 영국, 독일, 일본 등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안희제 선생은 교육자 활동만 한 것이 아닙니다. 1909년 10월에는 독립운동에 뜻이 있는 애국청년 80여 명과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을 결성하여 항일운동도 했었는데요, 단원으로는 남형우, 서상일, 윤세복, 김동삼, 신채호, 윤병호 등이 있습니다. 대동청년단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비밀결사항일단체였는데, 지금까지도 정확한 내막이 밝혀지지 않을 정도로 치밀했던 비밀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밀조직이었던 대동청년단은 세상에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그것은 백산 선생의 오랜 동지로서 광복 후 3대 국회의원을 지낸 창남(滄南) 윤병호가 세상을 뜨기 전 자필로 적은 회고 메모 때문이었습니다. 대동청년단의 단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단원 2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단원들은 반드시 피로 맹세해야 했습니다. 또한 단명이나 단에 관한 사항은 문자로 표기하면 안됐으며, 체포될 경우 자신에게만 한정하고 다른 단원들을 연루시키지도 말아야 했지요. 이렇게 다소 까다로운 규칙 덕분에 대동청년단이 비밀결사항일단체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백산 선생은 동아일보, 중외일보의 창립과 경영에 참여하면서 총독부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공격하는 등 언론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도 하였습니다. 1920년 동아일보 창립 시 78명의 발기인 중 1인으로 참여하여 부산지국장을 맡았으며, 1926년 ‘시대일보’를 인수하여 ‘중외일보’로 개칭하고 경영하면서 4년간 발행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1908년 영남지방의 유지들과 함께 ‘교남교육회’를 조직하여 잡지 《교남교육회》를 발간하며 민중계몽에 이바지하였습니다. 현재 기념관에는 잡지 《교남교육회》의 제1호~제12호의 합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럼, 기념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백산 선생의 구국정신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위치

이 근처 이렇게 둘러보세요

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변경금지)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