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팔각정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





남산 팔각정은 남산타워와 함께 남산의 대표적 명소로 꼽히는 정자이다. 남산 정상에 세워져 있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걸어서 올라가거나 남산 순환버스인 셔틀버스 또는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이용 정보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남산 정상 팔각정 옆에 있는 봉수대는 조선시대에 중요한 국가사항을 알려주는 연락수단으로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을 밝혔습니다. 봉수는 평상시에는 1개, 적이 출현하면 2개, 적이 국경에 가까이 오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적과 접전을 벌이면 5개를 올렸습니다. 130여년 전,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천문학자 ‘퍼시벨 로웰’은 남산 봉수대의 횃불을 보고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오는 빛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소식들은 경복궁에서 잘 보이는 이 봉수대에 모여서 왕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원래 남산에는 5개 노선의 봉수대가 설치 되어 있었는데, 함경도, 부산, 평안도 내륙, 평안도 해안, 여수 등에서 출발해 전국을 거쳐 각 봉수대에 집결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봉수제도는 1895년 전신과 전화가 도입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남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지도들을 참고하여 1993년에 복원했습니다. 봉수대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봉수군이 주변을 순찰하고 봉수를 올리는 것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연기를 피워 올리는 의식이 끝나면 봉수의식도 종료됩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남산의 쉼터, 팔각정 남산 팔각정은 1968년에 설치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원래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세운 ‘목멱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산을 조선시대에는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성계는 남산의 산신령에게 ‘목멱대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목멱신사’라는 사당을 세워 봄, 가을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신사가 있는 남산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나무를 베어가거나 묘를 쓰는 일 등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남산에 식물원과 공원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휴식처로 만들고, 목멱신사는 인왕산으로 옮겨졌습니다. 광복 이후부터는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는데요, 정자를 팔각형으로 만든 이유는, 동양에서 신의 세계를 의미하는 원형과 인간 세계를 상징하는 사각형의 중간이기 때문입니다. 목멱대왕이 있던 곳에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팔각정 앞 광장에는 분수를 설치하여 여름에는 시원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느라 지친 관광객과 시민들에게는 도심 속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600년 역사의 성곽 서울한양도성에는 조선 500년의 발자취, 일제강점기에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현대사가 쌓여있습니다. 남산은 한양 도성중 3구간에 해당하며 광희문에서 시작해 남산을 넘어 숭례문까지 이어집니다. 거리는 5.2㎞, 대략 3~4시간쯤 걸린답니다. 동그란 모양에 ‘서울성곽길’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면, 성벽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남산 성벽은 성돌이 쌓여진 모양만 보고도 벽의 축성시기를 알 수 있는데요, 조선 태조, 세종, 숙종 때 세 번에 걸쳐 쌓았습니다. 어떤 성돌에는 글자도 새겨져 있습니다. 경주, 함안, 경산 등의 고을이름을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공사실명제로 성벽이 무너지면 그 고을 사람들이 다시 쌓아야 했습니다. 성벽에 숨어있는 암문은 전쟁 시에 몰래 군사와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 둔 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을 따라가며 한양의 풍경을 즐기는 ‘순성놀이’가 있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성곽을 따라 순성놀이를 해보세요!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