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건청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 안의 궁이다. ‘건청’은 ‘하늘은 맑다’라는 뜻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건청궁의 왕의 생활공간인 장안당(長安堂,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냄)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곤녕합(坤寧閤, 땅이 편안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안당과 곤녕합은 복도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는 10년 정도 생활하였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 곤녕합 옥호루(玉壺樓, 옥으로 만든 호리병)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1909년(융희 3)에 철거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미술관이 들어섰다가 철거된 후 200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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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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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궁] 경복궁 향원정 북쪽에는 건청궁(乾淸宮)이라고 불리는 전각이 있습니다. 이 곳은 1873년, 고종이 왕실가족의 사유재산을 사용해서 지은 전각인데,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마무리하고 자신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만든 건물입니다. 궁궐 안에 또 다른 궁궐을 만든 셈인데, 이 곳에서는 고종과 왕비 민씨가 살았습니다. 고종은 이 곳에서 여러 나라의 공사들을 접견했었고, 1887년, 이곳에 조선 최초의 전등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김내관] “하지만, 1895년, 건청궁 안의 옥호루에서 왕비마마가 시해 당하는 통탄할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상궁] “을미년에 일어난 시해 사건이라고 해서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1895년 음력 8월 20일 새벽. 일본공사 미우라의 지휘에 따라 일본 낭인들이 침입해서 왕비와 왕비를 지키던 궁인들을 살해합니다.” [김내관] “그들은 살해한 시신을 근처의 숲으로 가져가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흥선대원군과 조선군 훈련대가 자행했다며 거짓말을 했고, 일본정부는 재판에서 이들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방면했습니다. [김상궁] “어휴, 정말 들을수록 가슴이 아프네요.” [김내관] “이 후에 충격을 받으신 고종전하께서는 다음해에 세자저하(순종)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러시아를 아라사라고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하지요.” [김상궁] “아관파천 때 건청궁을 떠난 왕실가족들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고, 이 건물은 1909년에 헐렸습니다. 지금 있는 건물은 2007년에 복원된 새로운 건청궁이지요”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