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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인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가장 소박하게 꾸몄다.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9월~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휴무일매주 월요일 ※ 단, 정기휴일이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과 겹칠 경우에는 개방하며, 그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이 정기휴일
주차불가능
유모차 대여없음
문의02-3668-2300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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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은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입니다.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져 창경궁과 더불어‘동궐’이라 불리었습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의 후원은 한국의 정원을 대표하는 유일한 궁궐 후원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이러한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더 많이 쓰인 궁궐입니다. 500여 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이 거처한 궁궐이죠. 공식적으로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버림으로써 창덕궁이 법궁의 지위를 이어왔습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 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 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합니다. 불규칙한 지형지세를 이용해 궁궐 건물을 경내 남쪽에 배치하고, 북쪽 넓은 구릉에는 후원을 조성하여 주변 환경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창덕궁의 후원은 어느 계절에 가도 좋습니다. 예쁜 꽃이 가득한 봄, 무성한 녹음이 진 여름,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까지! 여러분도 창덕궁 후원에서 왕과 왕비처럼 걸어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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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내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에 보이는 문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입니다. 1412년에 처음 세워진 이 문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려서, 1609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 후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켜와 궁궐에서 가장 오래된 정문이 되었습니다. 돈화문을 이용할 수 있었던 건 임금님과 외국 사신들이었습니다. [김상궁] “역시 가장 오래된 문이라서 그런지 위엄이 있네요! 문도 되게 큰 것 같아요.” [김내관] “맞아요, 돈화문은 다른 궁궐의 정문과 다르게, 다섯 칸으로 설계되었지요. 특히 임금님이 지나가는 가운데 어칸은 양쪽의 문보다 더 넓게 만들었어요.“ [김상궁] “어쩐지, 어칸이랑 이어진 이 어도랑 넓이가 비슷하네요! 근데 이렇게 정문 바깥쪽까지 월대 위에 어도가 이어진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김내관] “원래 모든 궁궐의 정문에는 월대가 있었어요. 돈화문의 월대는 일제강점기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기 위해 묻어버렸지요. 1997년에서야 이 월대를 되살리는 공사를 해서, 지금 다시 볼 수 있는거랍니다.” [김상궁] “임금님께서 행차 하실때, 이 문에서 월대까지 모두 나오는 모습이면, 진짜 멋있었을 것 같아요!” [김내관] “실제로 숙종 임금님 때, 이 곳에서 문과와 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름을 불렀는데, 그 때 모인 사람만 해도 문과 9명, 무과 1만 4천 2백 7명 이었지요. 일부만 이름을 불렀는데도, 아침에 시작한 것이 점심까지 행사가 이어졌답니다.” [김상궁] “우와~ 임금님이 직접 나와서 이름까지 불러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이네요!” [김내관] “그럼요! 합격자가 나온 고을에는 깃발을 세워서 알렸는데,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하는건 가문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도 굉장한 영광이었지요.” [김상궁] “임금님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한다는 돈화문의 뜻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네요! 우리 그럼 임금님의 덕을 보러 창덕궁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김내관] “김상궁! 여기서 입장권 끊고 들어가야 해요! 같이 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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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내관] 돈화문 안으로 들어오면 양 쪽으로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회화나무는 조선시대에 삼정승을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회화나무는 원래 한반도에서 흔하지 않은 외래종이었는데, 중국에서 회화나무의 씨앗을 가져와 심는 귀한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궁궐이나 서원, 향교 등 격이 높은 곳에 주로 심었습니다. [김상궁] “귀한 나무인 만큼, 화원들이 이 나무를 하나하나~ 다 그려놨지요!.” [김내관] “’동궐도(東闕圖)’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저도 동궐도에서 이 회화나무들을 본 기억이 나네요!” [김상궁] “맞아요! 동궐도는 1828년부터 1830년경에 그렸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그 때의 그림에 이 회화나무들이 그려져 있어요. 계산해 보면 거의 200년은 넘었다고 생각 할 수 있지요.” [김내관] “그림에도 양쪽으로 총 8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는데, 실제 조사 결과, 수령이 300년에서 400년은 된 것으로 추정했대요. 그래서 모두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되었지요.” [김상궁] “실제로 300년에서 400년 정도 되었다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창덕궁을 재건할 때쯤이지요? 그럼 정말 오래된거네요?!” [김내관] “하지만, 창덕궁 안에는 이 회화나무보다 더 오래된 나무도 있어요” [김상궁] “어디요? 저기 보이는 느티나무인가요?” [김내관] “아니, 주인공은 바로 향나무에요. 저 궐내각사 안쪽에 무려 750살을 먹은 향나무가 있어요.” [김상궁] “우와- 진짜 할아버지 향나무네요! 동궐도에도 그려져 있을 테니,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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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내관] 창덕궁에는 궐내각사라는 신하들이 일하던 기관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궁궐에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모두 사라졌고, 2000년대에 창덕궁의 궐내각사가 복원됩니다. 궐내각사 안에서 익숙한 이름의 두 기관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규장각과 검서청입니다. [김상궁]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이면서 학술이나 정책을 연구하던 기관입니다. 규장각에서 보통 관리하던 것은 역대 왕들의 친필, 서화(글과 그림), 책 입니다. 정조가 즉위하던 해에 창덕궁에 설치했습니다. [김내관] 보관하던 장서만 약 8만여권에 이르렀고, 어필(왕의 글씨), 인장은 별도 건물에 보관했습니다. 그래서 창덕궁 후원과 궐내각사에 규장각의 건물들이 있었고, 궁궐 밖인 강화도에도 규장각의 도서들을 보관하는 ‘강도외각(江都外閣, 외규장각)’이 있었습니다. [김상궁] “특히 이 검서청 건물은 원래 ‘대유재(大猷齋)’라는 건물이었는데, 국가의 제사나 상례 때 임금님이 망곡(곡을 하는 장소에 직접 가지 못하고, 그 방향을 향해 곡을 하는 일)을 하는 장소였어요.” [김내관] “그런 건물이 검서관들이 일하는 검서청으로 바뀐거네요.” [김상궁] “검서청으로 바뀐 뒤에는 이 곳에 다섯 수레나 되는 책을 꽉꽉 채워 보관했었지요.” [김내관] “우와, 그 책 다 보려면 일년도 넘게 걸릴 것 같은데요?? 그 책을 다 검사하고 본다니, 역시 검서관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네요.” [김상궁] “당연하지요, 규장각 검서관은 신분의 차별 없이 오로지 능력으로 올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 유명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도 검서관이었어요.” [김내관] “국사시험에 한 번은 나온다는 그 분들!! 모두 검서관 출신이었군요! 역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딱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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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내관] “궐내각사 안쪽으로 오니, 구 선원전이 나오네요.” [김상궁] “선원전이면 선원전이지, 구 선원전인건 또 뭐에요?” [김내관] “여긴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과 어진을 보관하며 차례를 지내던 아~주 중요한 장소란 말입니다!” [김상궁] “아이고 - 에그머니!! 내 입이 방정이야 방정!!” [김내관] “’쯧쯧쯧….순종황제께서 저 뒤에 선원전을 새로 지었잖아요! 그래서 원래 사용하던 선원전이 구 선원전이 되고, 여기 보관하던 책과 어진을 다 옮긴 거에요!” [김상궁] “반성하고 있어요…. 여기서 새로운 선원전으로 옮긴 어진들이 한국전쟁 때 다 불타버린것도 기억하고 있구요.” [김내관]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도 선원록은 남아있어서, 조선왕실의 계보를 알 수 있어요.” [김상궁] “선원록은 여기에도 보관했지만, 여러 개를 만들어 전국의 사고(史庫)에 보관했었지요. 그래서 선원록이 남을 수 있었던 거에요.” [김내관] “새로 지은 선원전은 비공개 지역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구 선원전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왕실의 정통성을 보관하는 장소를 볼 수 있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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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궁] “여기는 규장각의 책고 아니에요?” [김내관] “맞아요, 여기에 규장각에서 보관하던 많은 책 중에 일부가 있었던거에요.” [김상궁] “와~ 근데 책고 주변으로 이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있는 것이, 가을에 은행잎이 떨어질 때 여기 서 있으면 운치있겠네요” [김내관] “그렇지요. 여기서 친구들과 인생사진 건질 수도 있겠어요~” [김상궁] “저 앞에는 향나무도 있어요! 은행나무보다 키가 작은 것을 보니…… 이 동네 막내나무군요?” [김내관] “아니에요 김상궁! 이 나무가 바로 창덕궁의 최고참 향나무에요!” [김상궁] “어머 정말요? 동궐도 그림에 나온다는 그 향나무에요?!. [김내관] “맞아요! 하지만 2010년 태풍 때문에 나무가 부러져서, 이렇게 키가 작아진 거에요. 작아 보이지만, 이 나무의 실제 나이는 750년이 넘었답니다.” [김상궁] “조선왕조가 500년인데, 나무가 750년이면 진짜 이 동네 최고 어른이겠네요!”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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