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명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3 (만촌동)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 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마련하였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대구 지역 재실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1912년 경산 객사가 철거되자, 그 재목을 후손들이 옮겨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으로, 1966년에 낡은 건물을 중수하였다. 대구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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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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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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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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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재는 수성구의 대표 문화유산 중 하나로 도심에 위치하는데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여했다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 장군을 기리기 위한 재실입니다. 현판에 새겨진 모명이라는 재실 이름이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럼 두사충 장군은 어떤 인물일까요? 두사충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후손으로 임진·정유 양란 때 수륙지획주사 직책의 명나라 원군 장수였는데요. 전장의 지형 지세를 살펴 진영이나 진법을 결정하는 작전 참모로 활약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두사충은 명으로 돌아가는 대신 조선에 남는 것을 선택했어요. 그럼 두사충은 왜 한양이 아니라 대구에 터를 잡았을까요? 당시 전쟁에서 진지와 병영터를 고르는 유명한 풍수 전략가였던 두사충은 현재 대구 중구 포정동에 경상감영공원 터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터는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이니 가히 명당 중에 명당이로다. 포정동과 계산동 일대에서 살았던 두사충은 자신의 묫자리는 지금의 모명재 뒷산인 형제봉 아래를 선택했습니다. 모명재의 출입문인 만동문은 만절필동에서 유래됐습니다. 강물은 1만 번을 꺾여 굽이쳐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인데요. 모명재는 두사충을 공경한다는 뜻의 경모당과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에 대한 추모를 담은 숭정유루 2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고, 뒤편에는 두사충의 묘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앞마당에는 두사충 신도비가 세워져 있어요. 모명재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두사충 장군의 특별한 인연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그 후손들도 계속 교류를 이어오면서 선지의 뜻을 이어갔다고 해요. 이 신도비의 비문은 이순신 장군의 7세손인 이인수 장군이 지은 문장입니다. 이인수 장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삼도 수군 통제사를 지낸 분으로 이순신 장군 못지 않은 훌륭한 업적을 세운 명장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순신과 두사충, 두 장군의 첫 인연은 언제였을까요? 앞서 말했듯 수륙지획주사였던 두사충은 유명한 풍수지리 전략가였습니다. 영화 명량에서 삼도 수군 통제사였던 이순신이 고작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들을 소탕했던 짜릿한 순간을 기억하시죠? 이순신이 지형을 이용해서 난관에 빠진 아군을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었듯이, 두사충 역시 풍수와 지형을 이용해서 전략을 짜는 핵심 지휘관이었던 셈입니다. 이렇듯 이순신과 두사충은 공통점이 많았어요. 모명재 재실에는 두 사람의 우정을 나타내는 시 한 편이 있는데요. 재실 기둥 5개에 주련으로 걸려 있는 시가 보이시나요? 바로 이순신이 두사충에게 보낸 <봉정두복야>라는 한시입니다. ‘봉정두복야. 북쪽으로 가서는 고락을 같이 했고,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 했네. 성곽 남쪽 타향의 달밤 아래에서 오늘은 한 잔 술로 정을 나누노라.’ 이 시에는 두사충을 향한 이순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요. 두사충 역시 훗날 이순신이 묻힌 묫자리까지 알아봐 줬다고 하니 서로에 대한 깊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폐허 같은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이순신과 두사충.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후세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