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68계단

부산광역시 동구 영초길197번길 9

산복도로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산복도로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세로로 난 지상 6층 높이의 아찔한 계단이다. 계단의 수가 168개이며 계단 아래에 원래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식수로 쓰던 1개의 우물만 남아있으며 물이 부족하던 시절 물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물지게, 물항아리 등 남녀노소 누구나 만나는 만남의 장이었으며 소문이 퍼지는 근원지였다고 전해진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무일연중무휴
주차불가능
문의동구청 미래사업단 051-440-4781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토혼잡
  • 일혼잡
  • 월여유
  • 화여유
  • 수여유
  • 목보통
  • 금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물동이 이고 오르던 역사의 가시밭길

    3:30
    해설 대본 보기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위로 오르다 보면 “와우~!” 탄성이 절로 나오는 가파른 계단이 떡하니 나타납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경사에 백육십여덟 개나 되는 계단으로 만들어진 비탈길, 바로 일육팔 계단입니다. 일육팔 계단이 있는 이 일대를 영주동 산동네라 부르는데 산동네의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가장 빨리 왕래할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이 계단이지요. 일육팔 계단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삶부터 떠올리지만 이곳 산동네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지에 비해 산지가 훨씬 많은 부산의 지형적인 특징 때문에 산자락에서의 삶은 일찍부터 시작되었지요. 특히 일제의 주도하에 초량과 부산항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영선산을 깎아 해안을 매립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던 1900년대 초반엔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만큼 산등성이 판잣집은 늘어났습니다. 당시 막노동을 하던 일꾼들을 일본말로 ‘도가다(力方)’ 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바뀌어 일용직 육체노동자를 일컫는 ‘노가다’ 라는 말이 생겨났지요. 광복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전쟁 직후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들 덕분에 더 많은 판잣집들이 마치 피라미드처럼 산 위로 쌓여 올라갑니다. 한밤중에 비행기로 부산에 내리던 외국인들이 부산이 고층빌딩 빼곡한 대도시인 줄 알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죠. 급히 지어진 하꼬방들에 수도가 들어갈 리 만무했으니 산동네 아낙들에겐 아랫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나르는 것이 가장 고된 일과였답니다. 지금도 계단 하단부 바로 곁에 당시 사용하던 우물이 남아있는데요, 물을 푸기 위해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가득 찬 물동이를 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 일은 더 막막했을 겁니다. 등에는 젖먹이를 업은 채 양손엔 찰랑이는 양동이를 들고 귀한 물이 한 방울이라도 쏟아질세라 조심조심 오르다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겠지요. 더구나 당시엔 지금처럼 제대로 된 계단이 놓여있던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디딜 수 있는 바윗덩이를 박아놓은 정도가 다였다니,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올랐을 산동네 여인들의 고생이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 잡일을 구해야했던 남자들은 지금 전망대가 있는 계단꼭대기에 종일 죽치고 앉아있는 게 일이었지요. 기차나 배가 들어오는 게 보이면 거의 구르듯 부산역이나 부산항으로 내달렸던 곳도 이곳 일육팔 계단입니다. 그나마도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부산의 날씨 덕분에 가능했던 생활이었을 겁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오르다보면 그 시절의 삶의 무게가 오롯이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위치

이 근처 이렇게 둘러보세요

당산
관광지

당산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478번길 13

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