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서원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로2안길 20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오천서원에 배향된 양희지는 본관은 중화(中和), 자는 가행(可行), 호는 대봉(大峰)이다. 연산군 즉위 후 직제학과 부승지를 거쳐 1500년에 부총관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1502년 동지중추부사(中樞府使)가 되고, 겸세자우부빈객, 동지성균사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대봉집』이 있다. 오천서원은 파동 끝자락 골짜기 안 야산의 남쪽 사면에 좌묘우학(左廟右學)[사당이 동쪽 강당이 서쪽]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땅의 형편을 고려한 배치이다. 서원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좌측이 강당 영역이며 우측이 사당 영역이다. 강당과 사당은 각각 흙돌담으로 경계를 이루며 사당 영역이 강당 영역보다는 지대가 한 단 정도 더 높다. 출입문은 남쪽으로 각각 1개씩 있으며, 별도로 강당과 사당의 경계 담에 두 영역을 직접 잇는 작은 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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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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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대구에는 ‘일파 이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구에서 사람 살기 좋은 곳 1위는 이곳 오천서원이 있는 수성구 파동이고, 그 다음은 북구에 있는 무태라는 뜻이죠. 실제로 주변에 신석기, 청동기 유적이 발견될 만큼 파동은 오래전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고, 무릉계곡에 있는 오천서원이라고 소개할 만큼 이곳은 신선이 사는 땅에 버금가는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동 법이산 남서쪽 서당골에 자리 잡은 오천서원은 보시다시피 아늑하고 조용해서 선비들이 공부하거나 인격 수양에 몰입하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1786년 정조 10년에 지어진 오천서원은 대봉 양희지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대봉 양희지는 1474년 문과에 합격해 성종을 만나게 되는데, 성종은 양희지를 아끼는 마음에 이름을 선물합니다. 음인 희지는 같지만 한자의 뜻은 다르게, 버드나무는 가지가 적은 게 귀하다라는 뜻에 드물 희, 가지 지가 어떻겠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밖에도 성종은 양희지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을 청하지만, 양희지는 문무의 재질이 있으니 내가 만류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양희지의 재주는 문무를 겸하였으며 쓸 만한 사람입니다. 만류하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렇듯 왕과 신하들에게 인정받은 양희지는 후에 부모에게 받은 원래 이름 '희지'로 돌리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집중합니다. 저서로 대봉집이 있고 이곳 오천서원에 모셔져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