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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리문화센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영산로75번길 5 (무안동)

동본원사 목포별관은 목포에 들어선 일본 첫 불교사원으로 정식 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이다.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1898년 4월 세워져, 목포 심상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목포 내에서 일본인 소학교로 최초·정식 운영되었다. 이후, 일본인 학생 수가 점차 늘어나자 거류민회로 소학교 운영이 넘어가고, 1904년 현재 위치의 부지를 매수하여 1905년 11월 목조 단층 사원으로 완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해방 이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다가 1957년부터 2007년까지 목포 중앙교회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사찰이 교회가 되는 이색적인 약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목포 중앙교회가 사용하게 됐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10 민주 항쟁 당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이자 치열한 현장이기도 하다. 한때, 일본의 잔재로 여겨져 철거될 위기를 맞았으나 목포문화연대와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목포시에서 매입하여 2007년 7월 3일 국가등록문화유산 제34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실내 개조와 주차장을 조성하여 2010년 1월 19일 오거리문화센터로 개관하여 각종 문화행사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 : 목포문화재단 홈페이지)

이용 정보

이용시간09:00~18:00
휴무일매주 월요일 / 법정공휴일
주차가능
유모차 대여없음
문의목포문화재단 061-245-8833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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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에서 교회가 된 이유 오거리문화센터는 원래 동본원사로 불렸습니다. 이곳의 건물은 1897년 목포가 개항된 후, 가장 먼저 목포에 진출한 일본 불교사원인 동본원사의 목포별원으로 건립되어 정식 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인데요.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1898년에 세워졌으며, 목포 심상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목포 내에서는 최초로 일본인 소학교로 정식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개항장 쪽 일본 영사관 부지 근처에 포교소를 설치했다가 1904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이곳은 당시 일본인들이 살았던 개항장 지역과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 만나는 접경지에 위치하여 사찰이 입지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광복 후 정광산의 관리를 받다가, 1957년부터 목포중앙교회로 사용하게 돼, 사찰이 교회가 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목포중앙교회는 유신독재 시절부터 양심적인 종교인들이 나라를 걱정하며 자주 회합하던 곳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간에는 목포지역 시민 민주 투쟁 위원회 지도부가 수시로 회의를 개최하던 곳입니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곳에 모여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을 규탄하는 “피 값은 외상없다. 전두환은 즉각 퇴진하라.”라는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이로써 25일 이후 다수의 목포지역 개신교 성직자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2007년 등록유산으로 등록되었고, 2010년 이후부터는 오거리문화센터로 이름을 바꿔 개관해 각종 문화행사와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건물 마당에는 이곳이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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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