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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반죽동당간지주

충청남도 공주시 제민1길 15

공주 반죽동당간지주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의 입구에 세워 부처와 보살의 성덕을 표시하는 기를 당(幢)이라 하며 이를 달아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이 장대를 양옆에서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는 충남 공주시 원도심 제민천변에 있는 당간지주이다. 이것은 원래 백제시대의 대통사라는 절의 당간지주였는데 지금은 대통사는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당간지주는 서로 마주 보는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나 바깥쪽 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굵은 띠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기둥머리 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글게 깎았으며 안쪽 위아래 2곳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네모난 구멍을 파 놓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일부 손상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형태가 간결한 형태는 남아있다. 이 일대의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백제의 유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는 국도 23호선, 32호선, 40호선에서 웅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당진영덕고속도로 공주 IC와 논산천안고속도로 남공주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공주중학동구선교사가옥, 나태주골목길, 공주산성시장, 박찬호골목길, 공산성 등이 있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무일연중무휴
주차가능
유모차 대여없음
문의041-840-8224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토혼잡
  • 일혼잡
  • 월혼잡
  • 화여유
  • 수보통
  • 목여유
  • 금여유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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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기독교박물관 영리하고 신앙심이 깊던 꼬마 유관순은 그를 눈여겨 본 선교사 덕분에 공주 영명여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영명여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으로 편입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르다 순절하고 맙니다. 독립운동의 꽃 유관순 열사를 특별히 여겼던 그 선교사는 충청도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로버트 샤프 목사의 아내 앨리스 샤프였습니다. 한국 이름 사애리시로 더 알려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공주에 근대식 학교인 영명여학교와 영명남학교를 세우고 영아원과 유치원을 만들어 전국 최초 우유 급식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샤프 목사 부부가 머물며 복음을 전하던 곳이 공주제일교회입니다. 1903년 의료선교사 맥길과 전도사 이용주가 지금의 영명학당길에 초가집 2동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렸던 곳으로, 1931년 공주 최초의 감리교회로 건축되었습니다. 충청지역 감리교 선교의 중심지이자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주제일교회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손되었지만, 남아있던 반지하층과 벽 등을 수리하여 1955년에 복원하였습니다. 1979에 증축하면서 현관의 좌우 창과 본당 뒷벽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선구자인 이남규의 초기 작품입니다. 공주제일교회는 개축과 증축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한국 초기의 교회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고딕 양식의 형태를 잘 보존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개관되었습니다. 공주기독교박물관에는 샤프 목사 부부가 사용했던 물품들을 중심으로 공주지역의 근현대 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1실은 근현대 목양실로 실제 목회자들이 사용했던 공간을 재구성하였고, 전시2실과 3실은 소녀 유관순이 사용했던 그릇 세트와 공주지역 최초 양의사 양재순 박사가 사용했던 의료기구와 생활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공주기독교박물관은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문화와 공주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예배당에서 기독교 박물관으로 거듭나 기독교 문화는 물론 공주지역의 근현대 문화와 역사를 알리며 문화 선교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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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도시의 학교 근처에는 ‘하숙’이 성행했습니다. 지방의 학생들이 도시의 학교로 유학을 와 숙식을 하던 곳입니다. 부모와 고향을 떠나 온 어린 학생들에게 작은 하숙방은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고, 매일 매일 도시락을 챙겨주는 하숙집 아주머니는 제2의 어머니 같은 분이였습니다. 예로부터 공주는 교육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공주대와 공주교대를 비롯해 공주사대부고•공주고•공주여고•금성여고•영명고 등 시내에만 고등학교•대학교가 10여 개 있었습니다. 공주시에서도 제민천을 곁에 두고 있는 반죽동, 중동 일대는 유독 하숙집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찾아보기 힘들지만 공주시에서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조성한 장소인 공주하숙마을은 옛 한일당 약국 건물과 비어 있는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게스트하우스로 학창시절을 추억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주하숙마을 입구에는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고생 모습의 작은 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낮은 지붕의 숙방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마당에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교복 소년•소녀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벽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양희은•박은희•산울림 등의 가수 앨범 재킷이 걸려 있어 이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에게 추억을 불러 일으킵니다. 태엽을 감아 돌아가는 괘종시계와 하숙집 아주머니가 챙겨주셨던 노란색 양철 도시락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를 추억하게 합니다. 하숙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옛 하숙문화를 들려주는 공주하숙마을에서 공주의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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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민천은 공주시 금학동에서 발원하여 금성동 금강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오랫동안 공주 사람들과 함께해 온 삶 속 깊숙이 들어온 물길이기도 합니다. 공주의 시가지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공주목 관아, 충청감영 등 고려와 조선시대 주요 관청 건물부터 공주시청, 공주고, 공주여고, 공주의료원 등 공주의 근대를 열었던 주요 시설들이 모두 제민천 주변에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충남도청과 주요 관공서가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공주가 한때 충남의 중심 도시였다는 사실도 희미해졌지요. 사람과 물자, 상업시설이 떠나면서 제민천 주변 원도심은 시간이 멈춘 듯 정체되었습니다. 제민천도 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 하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하천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생태하천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제민천 상류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습지, 침전지를 만들어 자연의 방법으로 정화한 물을 제민천에 흘려 보냈습니다. 물길 옆에는 산책로가 만들어 졌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자 물고기가 돌아왔고 새가 날아들었고 사람들의 발길도 돌아왔습니다. 천변에는 게스트 하우스와 독립 책방, 개성 넘치는 카페, 공방, 갤러리가 늘어났고 주말이면 각종 문화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원도심에서 시간의 흔적을 소중히 담아낸 공주의 문화 중심지로 다시 태어난 제민천은 새롭게 태어난 공주의 문화 생태 물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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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민천과 원도심 신작로로 연결되는 이 골목은 공주군농협을 비롯하여 인근 중동초등학교, 호서극장, 공주 양조장, 제일은행, 공주도립병원 등으로 늘 북적대던 골목이었습니다.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공주의 중심지였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서 종알거리는 아이들 소리, 오후에는 골목길에서 뛰놀며 떠들던 소리, 저녁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목청 높여 아이들을 부르던 어머니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던 골목이 언젠가부터 사라진, 적막한 골목이 되었습니다. 이에 골목을 기억하고 지키고 싶은 공주 시민들이 모여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이라는 골목길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을 유명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루치아의 뜰’로 1964년에 지어진 집을 보수해 만든 카페입니다. 일상의 생활공간을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아름답고 쾌적한 공간으로 가꾸었다는 평을 받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루치아의 뜰’이 생기면서 낡고 쓸쓸한 골목에 생기가 돌아왔고, 직물공장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페, 폐가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게스트 하우스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생겨나면서 감성적인 골목이 되었습니다.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골목에서 얼기설기 얽혀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함께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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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근대역사상영관 충남의 중심지였던 공주에는 근대건축물들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옛 공주읍사무소도 그중 한 곳입니다. 1923년 일제강점기에 충남금융조합회 사무실로 지어진 벽돌로 쌓은 단순한 좌우 대칭형의 직사각형 건물로, 화강암으로 된 원기둥 4개를 배치하고 배흘림 양식을 취해 웅장함을 강조했습니다. 1932년 충남금융조합회가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1985년까지 공주읍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6년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면서 시청 건물로 쓰였습니다. 1989년 현재의 공주시청이 신축되자 민간에게 매각되어 미술학원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구 공주읍사무소는 2008년이 되어서야 공주를 대표하는 근대건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국가등록유산‘구 공주읍사무소’로 등록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시도 끝에 공주역사에 대한‘기억저장소’인 공주근대역사영상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여러 디지털 영상기록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1층에는 다양한 주제의 공주 이야기를 디지털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상 속에는 백제부터 현재까지 공주의 유구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2층은 읍사무소를 재현한 포토존과 휴식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시대별로 전시해 놓은 공주시민들의 사진 기록물이 흥미롭습니다. 공주근대역사영상관은 100여 년 전 공주의 근대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산일 뿐만 아니라 건축물에 담긴 의미와 가치가 현대에 재조명 된 공주의 근대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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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인 나태주 시인의 <풀꽃1>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공주의 대표적인 문인 중 한명으로 시인을 꿈꾸며 열여섯 살에 공주로 유학 온 문학 소년 이었습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새 단장하여 2014년 개관한 공주풀꽃문학관은 나태주 시인의 흔적과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자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시 위주의 다른 문학관과는 달리 지역 문인들과 문학지망생, 관람객들이 모여 강의도 듣고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는 언덕 담벼락에는 <풀꽃>, <행복>, <선물> 등 시인의 대표작이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문학관에 들어가면 “나의 시가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조그만 손수건이 되고, 꽃다발이 되고, 그들의 어깨에 조용히 얹히는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는 시인의 어록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시인의 문학세계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주풀꽃문학관에는 나태주 시인의 저서 전부와 시인이 직접 만든 시화작품, 그리고 공주지역 문인들의 저서와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주풀꽃문학관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나태주 골목길’이 있습니다. 세월이 묻어나는 담벼락에 그려진 아름다운 시화가 정겹습니다. 원도심을 흐르는 제민천변에도 시인의 시가 가득합니다. 나태주 시인은 ‘공주란 도시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요란한 매력은 없어도 구석구석 은은한 멋이 숨어 있다는 것이지요. 시골집 같이 포근하고 소담한 공주풀꽃문학관도 그렇습니다. 문학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공주풀꽃문학관에는 작고 볼품없는 것들에서 위로를 찾는 시인의 소소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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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