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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동헌 및 내아

울산광역시 중구 동헌길 167

울산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이며,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으며, 그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一鶴軒)이라 편액 하였다. 1763년(영조 39) 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다시 지어 반학헌(伴鶴軒)으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으로, 해방 이후에는 울산군청 회의실로 사용하였다. 1981년 복원이 이루어졌으며, 동헌과 내아, 오송정, 학성도호부아문(鶴城都護府衙門)만을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좌우에 2칸씩의 방을 두었다. 그리고 왼쪽 방 앞의 툇마루 주위에는 계자(鷄子) 난간을 둘렀다. 처마는 부연을 둔 겹처마이고, 기둥 위에는 익공(翼工) 형식의 포(包)를 올렸으며, 추녀마루가 길게 뻗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아는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둔 ㄱ자형 건물이다. 이 ㄱ자형 평면은 조선시대 울산지역 상류주택의 一자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인 형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1동(棟)의 건물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동헌의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은 학성도호부관아의 문이란 뜻이며, 이 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가학루(駕鶴樓)라는 정면 3칸 중층 문루가 위치하고 있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이용 정보

이용시간09:00~22:00
휴무일연중무휴
주차가능 요금 (무료)
유모차 대여없음
문의052-290-4842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혼잡
  • 토혼잡
  • 일여유
  • 월여유
  • 화보통
  • 수여유
  • 목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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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동헌 및 내아 울산광역시 유형유산인 울산 동헌 및 내아는 조선시대 지방행정기구였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오늘날의 울산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관아에는 관리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 그 식솔들이 살던 살림채인 내아, 공간 분할을 해 주던 아문과 문루와 같은 많은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 일제가 ‘읍성철폐령’을 시행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울산 동헌 및 내아 역시 이때 철거되었다가 1981년 복원을 통해 동헌, 내아, 오송정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울산 동헌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관리는 종3품의 도호부사입니다. 도호부는 부와 목 사이의 군사적 성격이 강조된 지역으로 도호부사는 이러한 도호부에 파견된 관리입니다. 참고로 조선은 수도 한성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부·목·군·현으로 나누어 부에는 부윤, 목에는 목사, 군에는 군수, 현에는 현령을 각각 파견했습니다.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은 막강한 권한이 있었지만, 임기도 짧고 해당 지역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을을 다스리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방관들은 그 지역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렇게 백성들로부터 칭송받았던 관리들은 그 지역에 사당이나 비석 등이 세워져 지방관의 업적이 남겨졌습니다. 울산 동헌 뒤편에 세워져 있는 선정비는 그러한 그들의 업적이 담긴 비석들입니다. 한편 동헌은 1681년 숙종 7년에 부사 김수오가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695년 숙종 21년에 그의 아들 김호가 부사로 부임하면서 일학헌이라는 현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1763년 영조 39년에 부사 홍익대가 중창하여 반학헌으로 그 이름을 개칭하였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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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