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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1417년(태종 17)에 쌓은 울산 병영성은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쌓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으로 경상좌도 병마도 절제 사영의 주둔지였다. 전체의 평면 모양은 타원형이며, 성의 크기는 둘레 약 1.2㎞, 높이 약 3.7m 정도 된다. 처음 건립할 당시에는 여장(墻: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과 같은 구조물) 등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가 세종·문종대에 와서 옹성(甕城)·적대(敵臺:雉城)·해자(垓字) 등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다. 내부시설로 우물·도랑·창고 등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과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 위치를 기박 산성 자리로 옮기기 위해 그 둘레에 붉은 기를 꽂아두었는데 별안간 동해 쪽에서 일진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쳤다고 한다. 이때 기 하나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날아갔는데, 그 방향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병영성 위치였다고 한다. 성을 풍수지리적 길지에 지어 외적의 침략을 막고 고을을 지키려는 백성들의 바람이 투영된 설화라 하겠다. 오랫동안 나라의 동남쪽 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부근에 주둔하던 왜군이 이곳의 돌을 가져다 울산왜성을 쌓으면서 훼손되었다. 현대에 들어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성터만 남았다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 사업이 진행되어, 지금은 많은 부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무일연중 무휴
주차가능
문의울산 중구청 문화관광과 052-290-3650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여유
  • 토혼잡
  • 일보통
  • 월여유
  • 화여유
  • 수혼잡
  • 목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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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1987년 7월 사적 제320호로 지정된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蔚山 慶尙左道兵營城)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8도(道)의 육군을 효율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병마절도사라는 직책을 두었습니다. 병마절도사는 군대가 집단으로 거처하는 ‘병영’에서 무예훈련과 무기제작 등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습니다. 태종7년인 1407년, 태종은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임금이 있는 한양에서 경상도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낙동강의 좌우를,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나누었습니다. 그 3년후인 1417년에는 현재 북구 중산동에 자리한 기박산성에 있던 좌병영을 오늘날 중구 병영성 자리로 옮겼습니다. 처음 경상좌도 병영성을 쌓았을 당시에는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고 있었으나 세종 때에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대문에 옹성과 적대를 쌓고, 해자를 팠습니다. 이때 성의 둘레는 1.2km, 높이는 3.7m, 성안에는 우물, 도랑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박산성에서 옮겨온 경상좌도 병영성과 관련된 설화가 <기 따라온 병영성>이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박산성에서 성을 쌓던 어느날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깃발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남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날아간 곳을 확인해 보니 지금의 병영이었습니다. 이에 이 곳은 하늘이 정해준 곳이라 여겨 좌병영을 기박산성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편, 울산경상좌도병영은 1426년 잠시 폐지되었다가 1437년 다시 설치된 후 약 458년 동안 울산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나, 1895년 을미개혁 때 군사제도가 개편되면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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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성11길 25 (서동)

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