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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영정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풍영정길 21 (신창동)

풍영정은 광산구 광신대교 아래로 흐르는 극락강변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강물도 맑지 않고 유속도 느린데다 난개발로 인한 주변지역의 경치 훼손으로 당시의 운치를 만끽할 수는 없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았으면 시수가 저절로 떠오를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이다. 여름이면 강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시원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주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어 마치 절해고도를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또한 풍영정은 조선조 명종 때 승문원 판교를 지낸 칠계 김언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당시 풍영정은 자연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자 학문과 예술을 교류하는 문화의 장이었다. (출처 : 오매광주)

이용 정보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무일연중무휴
주차불가능
유모차 대여없음
문의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문화예술과 062-960-8253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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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영정

    5:31
    해설 대본 보기

    풍영정은 광산구 광신대교 아래로 흐르는 극락강변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강물도 맑지 않고 유속도 느린데다 난개발로 인한 주변지역의 경치 훼손으로 당시의 운치를 만끽할 수는 없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았으면 시수가 저절로 떠오를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입니다. 여름이면 강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시원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주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어 마치 절해고도를 연상하게 하는 곳입니다. 풍영정은 조선조 명종 때 승문원 판교를 지낸 칠계 김언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입니다. 칠계란 지금의 극락강의 옛 이름입니다. 김언거는 고향의 강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를 칠계라 지은 것이죠. 사람은 자연을 좇고 자연은 인간세상을 따르니 풍영정 앞으로 흐르는 천의 이름은 풍영정의 이름을 빌어 풍영정천이라 부르죠. 풍영이란 뜻은 세상에서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자연의 경관을 벗삼아 스스로의 심신을 다스리는 하나의 수양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온갖 복잡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바람을 마음껏 즐기며 시만 읊겠다는 그의 뜻이 ‘풍영’이라는 정자 이름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김언거의 속마음이 풍영정의 원운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벼슬길에 있으면서 편히 쉬지 못했는데/ 높은 누정에 올라서니 모든 근심 사라지네/ 노를 젖는 사공 인영 달빛 아래 비쳐있고/ 물을 찾는 기러기떼 바람소리 차갑도다/ 이름있는 이 지역이 한이 없이 화려하니/ 지나가는 길손들이 찾아와서 머무르네/ 난간위에 기대앉아 제노시편 바라보니/ 칠수나산 경관이 천만추를 이어가리' 풍영정을 내왕했던 당대의 명현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황, 이덕형, 송순, 고경명, 김인후 등이 지은 시문과 한석봉이 쓴 <제일호산>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들 시문을 찬찬히 들여다보자면 옛 선비들의 단아한 모습과 학문을 숭상하는 정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풍영정은 자연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자 학문과 예술을 교류하는 문화의 장이었습니다. 풍영정에 관한 재미난 일화 두 가지가 전해져 옵니다. 명종이 정자에 걸 현판의 글씨를 당시 기인이었던 갈처사에게 받아다 걸라고 했습니다. 김언거는 기쁜 마음으로 갈처사를 찾아갔으나 여러 번 헛걸음을 했고 무려 열네 번을 찾아간 끝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갈처사는 칡넝굴로 붓을 만들어 글을 써주며 가는 길에 절대로 펴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언거가 첫 장을 펼치자 ‘풍’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놀란 김언거는 돌아가 갈처사에게 다시 써줄 것을 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그의 제자인 황처사에게 ‘풍’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판을 자세히 보면 ‘풍’자는 나머지 ‘영’과 ‘정’자보다 자획이 조금 가늠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일화는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자를 지을 당시에는 지금의 풍영정을 주 정자로 하고 뒤로 이어진 봉우리들을 따라 마치 징검다리처럼 11채가 더 있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왜인들이 다른 채에 다 불을 지르고 마지막으로 풍영정에 불을 던지려던 찰라 현판에 새겨진 <풍영정> 세 글자가 물오리로 변해 극락강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왜인 대장이 서둘러 불을 끄라고 지시하자 불길이 잡혔고 물오리들이 다시 현판으로 날아와 <풍영정> 세 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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