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 (통인동)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였던 곳으로, 철거될 위기에 있던 이곳을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매입하여 보전·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이상의 큰아버지 댁의 일부로 본채, 행랑채, 사랑채까지 있던 300평 규모의 넓은 집이었지만 10개의 필지로 나눠져서 한옥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중 집터의 일부를 매입한 것이다. 실내에는 이상의 흉상과 초상화가 있고 그의 작품을 연대별로 보관한 아카이브가 한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어 이상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실내의 왼편으로 콘크리트 사각 문틀이 육중하게 설치되어 있고 검은색으로 도색된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빛이 없는 어두운 공간 속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높지 않은 계단 끝에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면 환한 빛이 실내로 밀려 들어온다. 어두운 시대상과 그가 처한 현실 상황에 한 줄기 자유를 갈망하는 감정을 공간으로 잘 표현했다고 극찬받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용 정보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NaN:NaN
해설 대본 보기
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특한 문학세계로 유명했던 문학가 이상은 어린 시절 큰아버지에게 입양돼 통인동 토박이로 자랍니다. 그의 큰아버지의 집은 원래 거대한 한옥이었는데, 나중에 이상이 물려받았고, 사업에 실패하자 집을 팔게 됩니다. 팔린 집은 5개의 땅으로 나뉘어서 계속 주인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이상의 집이 있는 곳은 그 5개의 땅 중 하나입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3살 때 이 집에 양자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큰아버지는 아들이 없어서 이상을 입양했는데, 재혼한 큰어머니도 이상에게 애정이 없었습니다. 이상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특별히 재능을 보였지만, 큰아버지는 돈을 벌 수 있는 건축기사로서의 길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해 건축기사가 됩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취업한 이상은 필명을 사용해서 글을 썼는데, 주로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시대적인 혼란을 문학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그의 필명인 ‘이상(李箱)’도 한글로 읽을 때 여러 가지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춘 사람의 좌절과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난해한 문학세계와 고뇌하는 이미지로 각인된 이상이지만, 자신의 진짜 가족에게는 효도하는 아들이자 든든한 큰오빠였다고 합니다. 여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큰오빠는 어머니에게 늘 공손했고, 뭘 못해드려서 애태우곤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상은 여동생을 “나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하며 아꼈다고 합니다. 이 집은 이상의 어린 시절의 어둠과 희망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전시실 제일 안쪽, 어두운 공간에서 그의 일생을 담은 작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요. 계단의 끝에 무거운 미닫이 문을 열면, 이상의 집 마당과 지붕이 보입니다. 자유로의 출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문학가의 집에서, 이상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