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1](/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99%2F3309799_image2_1.jpg&w=3840&q=75)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2](/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00%2F3309800_image2_1.jpg&w=3840&q=75)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3](/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01%2F3309801_image2_1.jpg&w=3840&q=75)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4](/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02%2F3309802_image2_1.jpg&w=3840&q=75)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5](/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03%2F3309803_image2_1.jpg&w=3840&q=75)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길이 710cm, 높이 260cm, 넓이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서 고대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화도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의 제작 기겁과 선사시대의 다양한 무덤 형태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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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우리나라에 분포된 고인돌은 일명 북방식으로 불렸던 탁자식 고인돌과 남방식으로 불리던 바둑판식 고인돌,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 고인돌,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위석식 고인돌 등이 있습니다. [여자] 탁자식 고인돌은 넓은 판석으로 축조한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형식으로, 판석 4매 혹은 6매 이내로 짜 맞춘 무덤방 위에 납작한 덮개돌을 올린 고인돌입니다. 외관이 책상처럼 생겨서 탁자식이라고 불립니다. [남자] 바둑판식 고인돌은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굄돌 일명 받침돌을 4개에서 8개 정도 놓습니다. 그 받침돌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덮어 올린 방식으로 바둑판처럼 보인다고 하여 바둑판식 고인돌로 불립니다. 외형상 지표면에서 들려 있어 웅장하게 보이는 바둑판식 고인돌은 뚜렷한 무덤방이 없는 것이 많습니다. [여자] 개석식 고인돌은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뚜껑으로 덮은 형식의 고인돌입니다. 받침돌이 없이 바로 무덤방을 덮은 개석식을 무지석식, 뚜껑식, 대석개묘 등으로 부르고도 있습니다. 개석식 고인돌은 거의 돌로 만든 무덤방이 확인되고 있어 원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요동반도, 한반도, 일본 규슈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 고인돌 형태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무덤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 제주식이라 불리는 위석식 고인돌은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데, 수매의 판석이 덮개돌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려 세워진 형태입니다. 지상에 드러난 판석들의 수가 6매 이상으로 덮개돌의 평면 형태와 유사하게 무덤방 형태를 하고 있어 대개 타원형이나 방형에 가까운 무덤방 형태가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고인돌 중 위석식 고인돌은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형태입니다. [여자] 강화 대산리 고인돌은 고려산의 동쪽 봉우리인 북산의 북쪽능선의 맨 마지막 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발 20m 높이 능선 대지 위에 있습니다. [친구1] “여기 좀 봐, 여기” [친구2] 왜? 어? 이게 고인돌이야?” [친구1] “응, 고인돌이 무너져서 덮개돌이 내려앉았대.” [친구2] “고인돌이 무너지기도 하는구나!” [친구1] “탁자식 고인돌은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 이 무덤 주인 입장이면 좀 그렇겠다. 자기 무덤이 무너진 거니··” [친구2] “무덤?” [친구1] “고인돌이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잖아. 물론 무덤 말고도 묘표석으로 사용되었거나 제단의 기능을 하는 고인돌도 있지만 말이야” [친구2] “청동기라니··· 그렇게 오래된 거였어? 고인돌이란 게?” [친구1] “응, 그럼. 아깝다.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2] “이거라도 남아 있는 게 어디냐.” [여자] 강화 대산리 고인돌은 무너진 상태에서 덮개돌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고인돌 무덤은 오른쪽의 크기가 길이 2.4m 너비 1.5m, 높이 0.45m이고, 왼쪽의 크기는 1.6m, 너비 1.3m, 높이 0.3m입니다. 덮개돌은 길이 3.68m, 너비 2.6m, 두께 0.5m로 되어 있습니다. 강화 대산리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이 내려앉아 현재와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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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강화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군은 북서쪽 부근리 고인돌 군과 평야를 사이에 두고 약 400m 떨어져 있습니다. 강화도의 대부분의 고인돌과는 달리 평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일본인 이마니시 류가 이 5기의 고인돌을 조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여자] 이마니시 류가 이 고인돌군을 조사할 당시에는 2개의 장축 굄돌, 일명 받침돌과 서북쪽의 마감돌이 잘 남아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북쪽 받침돌만이 덮개돌을 떠받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없어져서 원형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남자] 강화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 군의 구성을 보면 탁자식 1기와 개석식 4기로 되어 있습니다. 탁자식 고인돌은 넓은 판석으로 축조한 무덤방이 노출되어 있는 형식으로, 판석 4매 혹은 6매 이내로 짜 맞춘 무덤방 위에 납작한 덮개돌이 올려진 형식입니다. 흡사 책상처럼 생겼다 하여 탁자식 고인돌로 불립니다. [여자] 개석식 고인돌은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덮은 형식을 말합니다. 받침돌이 없이 바로 무덤방을 덮은 것에서 개석식을 무지석식, 뚜껑씩, 대석개묘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형식에서는 거의 돌로 만든 무덤방이 확인되고 있기에 무덤으로서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지역에서는 덮개돌 두께가 얇으나 남쪽 지역에서는 대체로 두꺼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자] 강화 하도리 고인돌군 중 탁자식 고인돌은 북쪽의 굄돌, 일명 받침돌은 길이가 2.15m이고 두께는 0.27m 높이는 0.7m입니다. 남쪽의 받침돌은 덮개돌 밑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길이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가 2.62m이고 너비는 1.95m 최대 두께는 0.65m입니다. [여자] 강화 하도리 고인돌은 한때 개인의 밭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강화군이 고인돌이 위치한 땅을 매입하여서 현재와 같이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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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기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남자] “지석묘가 뭐야” [여자]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야. 다른 말로는 고인돌로 부르고 있어.” [남자] “아하! 고인돌!” [여자] “강화군 하점면 부근에는 40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중 부근리 지석묘라고 부르는 이 탁자식 고인돌이 1964년에 사적 137호로 지정됐어.” [남자] “탁자식 고인돌?” [여자] “응. 예전에는 한반도 북쪽이랑 중국 쪽에서 많이 발견돼서 일명 북방식 고인돌로 불렸는데, 한반도 남쪽 부근에서도 이와 같은 모양의 고인돌이 발견돼서 지금은 북방식 고인돌로 안 부르고 있어. 생김새가 책상 모양이어서 탁자식 고인돌로 부르고 있지.” [남자] “근데 고인돌이라고 하면 무덤이잖아. 여기 고인돌은 무덤 같이 안 보이는데?” [여자] “무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고인돌이 무덤의 기능만 있는 건 아니거든?” [남자]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 “고인돌이 무덤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제단의 기능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묘지의 묘표석 기능을 하기도 해.” [남자] “그래?” [여자]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묘실을 구성했던 판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무덤의 기능을 가진 고인돌이 아니라, 제단 기능을 하였던 고인돌로 보는 견해가 많거든.” [남자] “그렇구나. 그렇게도 사용되었구나, 고인돌이.” [여자] 탁자식 고인돌은 넓은 판석으로 축조한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된 형식으로, 판석 4매 혹은 6매 이내로 짜 맞춘 무덤방 위에 납작한 덮개돌을 올린 고인돌입니다. 탁자식 고인돌 중 길이가 8m 이상이고 폭이 5m 이상 그리고 높이가 2m 이상인 초대형의 고인돌은 요동반도와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서만 나타나고 있으며 구릉이나 산 중턱에 1기씩만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북한에서는 발굴지역명을 따라 오덕형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석붕이라 불립니다. [남자]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은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아서 고인돌과 관련된 유물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삼거리 유적에서 발굴된 껴묻거리 등을 봤을 때 부근리 고인돌에도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2.6m 높이를 갖고 있고,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받침돌은 지표면에서 약 70도가량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원래의 공법인지 아니면 후대에 기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많은 학자는 덮개돌의 무게로 인해 후대에 받침돌이 기울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고인돌 옆에는 또 하나의 파괴된 고인돌이 있는데, 굄돌은 없어지고 판석의 뚜껑만 수직으로 엎어진 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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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강화 점골 고인돌은 부근리에서 망원 간 도로 중간지점에 있는 콩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문화해설사] “강화 점골 고인돌은 한국 지석묘 연구에 의해 처음 알려졌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이 고인돌은 1991년에 처음 측량조사가 실시되어 고인돌의 규모와 형식이 자세하게 밝혀졌습니다.” [관광객] “여기 고인돌이 책상 모양이네요.” [문화해설사] “네. 강화 점골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입니다. 생김새가 탁자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요. 옛날에는 북방식 고인돌로 불렸습니다.” [관광객] “아! 배운 적 있어요. 북방식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 [문화해설사] “탁자식 고인돌은 판석으로 축조한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형식의 고인돌을 말하는데요. 보통 판석을 4매에서 6매 이내로 사용했습니다. 지상에 만든 무덤방 위에 덮개돌을 올려서 만들었는데요. 주로 한강 이북, 중국의 요령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서 북방식 고인돌로 불렸었습니다.” [관광객] “지금은 왜 탁자식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문화해설사] “한반도 남쪽에서도 탁자식 고인돌이 발견됨으로써 북방식 고인돌이라는 말 대신 탁자식 고인돌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점골 고인돌에서 여기 보이는 받침돌이 무너져 내렸었는데 지금은 원형 그대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관광객]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 고인돌은 언제 만들어졌나요? 구체적인 연도라던가 그런 건 알 수 없나요?” [문화해설사]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기록이 된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의 연대와 형식 간의 선후 관계를 통해서 추정하거나, 자연과학적인 연대측정 자료를 응용하여 시기를 파악하고 있는데요. 절대연대 자료에 따르면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기원전 12세기에서 9세기라는 공통된 측정치를 보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원전 12세기경에 고인돌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관광객] “그럼 언제까지 고인돌이 지어졌었나요?” [문화해설사] “청동기 시대 후기에 해당되는 유물의 출토로 인해서 보통은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약 1000년에 걸쳐서 형성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관광객] “고인돌의 역사가 참 깊네요.” [남자] 강화 점골 고인돌은 해발 15m 정도의 낮은 지대에 있는 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북쪽 방향에는 마감돌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강화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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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1] 아 공기 좋다.” [친구2] “공기 좋지?” [친구1] “응, 근데 여기 웬 돌이?” [친구2] “아, 그거 고인돌이야!” [친구1] “고인돌?” [친구2] “고인돌이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건 알지? 그 무덤들이 여기 강화 고려산 서쪽 능선에 자리 잡고 있어.” [친구1] “무덤들? 하나가 아니야?” [친구2] “가끔 고인돌들이 10기에서 20기에 달하는 무리를 이루고 있기도 해. 강화 삼거리 고인돌 군도 그런 식으로 무리를 이뤄서 분포하고 있어. 강화도에는 여기처럼 고인돌이 무리 지어 분포하는 고인돌 군이 5곳이나 돼.” [친구1] “그렇구나” [친구2] “여기에는 모두 9기의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고 해. 그런데 여기는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원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도 않아.” [남자] 탁자식 고인돌은 넓은 판석으로 축조한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형식으로, 판석 4매 혹은 6매 이내로 짜 맞춘 무덤방 위에 납작한 덮개돌을 올린 고인돌입니다. 외관이 책상처럼 생겼다고 하여서 탁자식으로 부르는데 주로 한강 이북에서 중국 요령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한때 북방식으로도 불렀습니다. 탁자식 고인돌중 대형은 주로 제단이나 기념물로 축조되었습니다. [여자] 탁자식 고인돌 중 길이가 8m 이상이고 폭이 5m 이상, 높이가 2m 이상인 초 대형급의 고인돌은 요동반도와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서만 나타나고 구릉이나 산 중턱에 1기씩만 위치하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남쪽의 탁자식 고인돌은 대게 3~4m 크기의 덮개돌과 그 밑의 무덤방 높이도 1m 이내로 고인돌의 규모가 작고 무덤방의 폭도 좁게 나타납니다. [남자] 강화 삼거리 고인돌 중에는 덮개돌에 성혈이라고 하는 작은 바위 구멍이 있는 것이 있는데 이를 별자리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고인돌은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제단이나 묘역을 상징하는 묘표석의 기능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강화 삼거리 고인돌은 2000년 12월 2일 고창·화순의 고인돌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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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강화 고인돌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삼거리, 고천리, 오상리, 교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인돌은 주로 고려산 북쪽 산기슭에 127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강화는 한강 강구의 섬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에 고인돌 또한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 “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돌을 이용한 거석기념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아시아 등 이외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의 고인돌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인돌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탁자 모양을 한 형태는 세계적으로 나타난 공통점입니다.” [학생] “선생님 그럼 고인돌은 다 탁자 모양인가요?”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다. 탁자식 고인돌 말고도 거대한 덮개돌 밑에 받침돌이 있는 바둑판식 고인돌도 있구요. 지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뚜껑처럼 사용한 개석식 고인돌, 그리고 받침돌들을 돌려서 세운 위석식 고인돌도 있습니다. 그중 바둑판식 고인돌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자] 강화 교산리 고인돌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에 위치한 고인돌 군으로서 1999년 4월 26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별립산 북쪽 구릉에 11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곳 고인돌은 굄돌 일명 받침돌과 덮개돌의 일부만 훼손되었을 뿐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합니다. [여자] 강화 교산리 고인돌군은 받침돌과 마감돌 및 덮개돌을 갖춘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가 하면 간혹 크기가 3~4m 되는 덮개돌을 갖춘 바둑판식 고인돌 무덤도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야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인위적인 훼손이 적었기 때문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남자] 탁자식 고인돌은 판석으로 만들어진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형식으로, 판석 4매에서 6매 이내로 짜 맞춘 무덤방 위에 납작한 덮개돌을 올렸습니다. 마치 책상처럼 생겨서 탁자식 고인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로 한강 이북에서 중국 요령 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서 한때 북방식 고인돌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여자] 바둑판식 고인돌은 판돌을 세우거나 깬돌, 자연석으로 쌓은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주위에 받침돌을 4개에서 8개 정도 놓고 위에 커다란 덮개돌로 덮은 고인돌을 말하는데 흡사 바둑판처럼 생겼다고 하여 바둑판식 고인돌이라고 부릅니다. 규모가 큰 바둑판식 고인돌은 산기슭이나 구릉, 계곡 끝 평지에 1기씩만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가운데에 있거나 어느 정도 떨어진 독립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고인돌의 덮개돌은 대개 길이 3~6m 두께 2~4m 정도의 달걀처럼 생긴 둥그스런 형태나 각 면이 반듯하게 잘린 직육면체 형태의 외형을 갖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