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공원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장충동2가)
장충단공원은 항일운동과 관련된 애국충정이 깃든 민족공원이다. 남산의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이 공원은 조선 영조 때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자리이다.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들에 의해 경복궁에서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장병이 일본인들을 물리치다가 죽음을 맞았다. 이에 고종 황제는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1900년 11월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짓고 1908년까지 매년 춘추로 제사를 올렸다. 원래 장충단은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사당은 한국전쟁 중 소실되었고 장충단에 세워졌던 비만 남아 196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1919년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박문사라는 절을 세우고 장충단 자리에 공원을 조성했는데, 광복 후 모두 철거되었다. 1984년 9월 22일 근린공원이 된 장충단공원은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의 일부로 흡수, 합병되었다. 나머지 구역은 장충단공원이라는 예전의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장충단공원 일대는 장충단비, 수표교, 승정전, 관성묘, 와룡묘 등 문화재를 비롯하여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이준, 김용환 선생 동상 등이 있다.
이용 정보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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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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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대본 보기
고종 황제가 세운 사당 도심 속의 휴식 공간인 장충단 공원은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곳입니다. 1895년 일본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당시 많은 신하들과 병사들이 황후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는데요, 고종 황제는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장충단 사당을 헐고 한국 침략의 주동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를 지었습니다. 광복 후에 박문사는 모두 철거되고, 이 곳은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장충단 공원의 상징인 ‘장충단비’가 이곳에 남아 있는데, 비석에 적힌 한문은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황태자였을 때 직접 쓴 글씨입니다. 공원 안쪽에는 대한민국 독립에 관련된 기념물들도 있는데요, 3∙1운동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것을 기념하는 ‘파리장서비’와 고종황제의 밀사로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인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냇가의 수표교는 조선시대에 물 높이를 측정하는 기구인 ‘수표’와 함께 종로의 청계천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이 흐르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다리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