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광장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종묘는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종묘 건축물은 문화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정기총회 의결을 거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공원 안에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이 종묘를 드나들 때 물을 마셨다는 우물이 다시 만들어졌고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과 편의시설을 갖춘 녹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종묘 앞 일대 39,669m㎡(1만 2천여 평)의 마당에 주차시설을 갖춘 종묘광장공원은 서울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용 정보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화여유
- 수여유
- 목보통
- 금혼잡
- 토혼잡
- 일혼잡
- 월여유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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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도 사람처럼 먹고 마시며 잠을 잔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귀신이 생활하는 집을 짓고 음식을 차려 주었는데, 조상신을 모신 집을 사당이라 불렀지요.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는 집집마다 사당을 지어 조상신을 모셨답니다. 종묘는 왕실의 조상신을 모신 사당입니다.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공되었죠.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정전과 영녕전, 제례 준비에 필요한 몇몇 부속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각을 살펴보면 장식과 기교를 최대한 절제하고자 한 것이 느껴지는데요. 이는 종묘가 조상신의 영혼을 모신 엄숙하고 경건한 공간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색만을 사용하고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종묘는 조선 왕실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곳이에요. 세종 시기 조선에는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을 정도의 큰 화재가 일어났었는데, 큰 화재로 인한 위기 속에서 소헌왕후는 종묘를 가장 먼저 지키라고 명령했었죠. 종묘에서는 매년 계절마다 조상의 이름을 쓴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왕비를 뽑거나 세자를 결정하는 등 왕실의 중요한 일이 생겨도 종묘에 가서 조상신에게 알리고 좋은 일이 계속되기를 기원했어요. 왕실 사람에게 큰 병이 나거나 나쁜 일이 생겨도 종묘를 찾았지요. 조상신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종묘제례라 불리는 제사 의례가 행해지고 있으며 제사에는 종묘제례악의 음악과 춤이 동반됩니다. 이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죠.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오랜 정신적 전통인 조상숭배 사상과 제사 의례를 바탕으로 엄격하게 지어진 종묘에서 종묘제례악을 즐겨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유형과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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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하마비 옆에는 돌로 된 계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왜 이 돌계단은 이 곳에 남게 된걸까요? 이 돌계단의 이름은 ‘대석(臺石)’입니다. 대석은 보통 어떤 물건을 받칠 때 쓰는 돌을 말하며, 쉽게 말해 ‘돌로 만든 받침’입니다. 이 대석 위에는 원래 조선시대의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앙부(仰俯)’는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이라는 뜻입니다. 종묘에 앙부일구가 설치된 것은 세종 16년(1434)때인데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해시계는 사라지고, 기단만 남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단을 ‘일영대(日影臺)’라고 불렀었답니다. 1898년 이곳에는 전차궤도를 만들기 위해 공사가 시작되었고, 이 때 기단이 함께 파묻히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종묘일대를 정비하기 위한 발굴작업 중 다시 나타나게 된 앙부일구 대석은 종로 3가에 있는 탑골공원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었는데요, 종묘공원(종묘광장)복원 당시 원래의 종묘 앞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대석 위에 해시계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따스한 관심을 받으며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답니다. 그럼 이제, 종묘 외대문으로 가기 위해 왕처럼 여유롭게 전교를 건너볼까요? <이 가이드는 한국관광공사 백지윤 님의 목소리 재능 기부로 녹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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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공원(종묘광장)이 복원되면서 새롭게 나타난 다리가 있습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종묘전교(어교)’입니다. 조선시대 종묘 앞에는 작은 개천이 흘렀는데, 세종대왕 때 개천에 홍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묘 앞으로 인공제방을 만들어서 물길을 돌렸습니다. 이 때 새로운 물길을 건너기 위해 설치된 다리가 종묘전교였습니다. 종묘전교는 임금의 가마와 행렬이 지나야 했기 때문에, 다른 다리보다 훨씬 폭이 넓었습니다. 처음 설치되었을 때는 나무다리였지만, 세종 3년(1421)에 돌다리로 개축했고, 현종 4년(1663)에 개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다리는 1760년에 제작된 <준천사실>과 1860년대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지지>에도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하수도 정비를 위해 종묘 일대에 공사를 진행하면서 다리와 하천을 그대로 땅에 묻었고, 최근까지 다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10년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종묘전교의 기단과 개천의 석축이 확인되었고, 기록과 현장확인을 거쳐 복원되었습니다. 남아있는 지도와 사진에서는 정확한 다리의 모양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종묘 안에 있는 어도와 신도의 모습을 참고하여 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어도를 설치하는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다리의 네 모서리에는 해태상을 새긴 화표주(華表柱, 분묘가 있는 곳에 세우는 기둥)를 세웠습니다. 왕의 길을 따라 종묘로 향하는 길에는 임금님이 마셨다는 우물이 있답니다. 다리를 건너 이동해 볼까요? <이 가이드는 한국관광공사 백지윤 님의 목소리 재능 기부로 녹음되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종묘 [유네스코 세계유산]](/tools/trip/_next/image?url=https%3A%2F%2Ftong.visitkorea.or.kr%2Fcms%2Fresource_photo%2F57%2F4063057_image2_1.jpg&w=3840&q=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