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웬기념각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백서로70번길 6





기독간호대학교 내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친지들이 보낸 기금 4,200 달러로 1914년에 세워진 연면적 434평방미터(부속건물 포함)인 양옥 건물이다. 이 건물은 평면 형태로 보아 예배당 및 집회 실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나, 지금은 기독간호대학교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웬은 1900년대에 광주에 들어온 양림동의 서양촌 외국인 중 1명으로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과로로 1909년에 죽었다. 오웬은 생전에 그의 할아버지 기념병원을 지으려다 선교 활동이 급하다고 판단하여 먼저 할아버지 기념각을 지을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그 계획이 추진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기념관 현판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회색 벽돌의 2층 건물로서 평면 형태는 정방형이나 대각선 상의 모서리에 위치한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대칭 형태이다. 주 출입구는 북쪽과 서쪽에 똑같은 모양으로 있으며 동쪽과 남쪽에는 모서리에 조그마한 문으로 된 부출입구가 있다. 1층 바닥은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하여 약 0.9/10의 경사가 져 있으며, 2층의 노대(balcony) 역시 설교단을 향해 1.2/10 경사져 있다. 벽은 길이 225mm, 나비 110mm, 두께 55mm의 회색 벽돌을 사용하여 네덜란드식 쌓기를 하였다. 벽의 두께는 49cm로 공간 쌓기를 하였으며 지면과 면하는 고막이 부분은 장대석의 화강석으로 축조하였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으며 2B 두께의 붙임 기둥을 설치하였다. 개구부에는 창, 문 모두 동일한 형태의 결원 아치를 사용하였으며 하인방의 창대돌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또 정면의 작은 광창에는 창대 돌을 마구리 내쌓기 한 벽돌이 지지하고 있다. 양쪽의 현관 부분은 아치벽돌을 사용한 반원 아치로 key stone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porch의 천장은 나무널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리고 석조로 된 아치대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커다란 원형 주철관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지붕의 구조는 맨사드 지붕틀로서 평보를 내부에 설치된 2개의 기둥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굴뚝이 올라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함석 잇기를 하였다. 실내의 바닥은 마루널을 설교단을 향하여 경사지게 깔았으며, 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하였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영화 소율과 연희가 당대 유명 가수 이난영의 공연을 보러 간 장소이다. 실제로도 과거 기독교 관련 집회는 물론 강연, 음악회, 졸업식 등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 행사를 담당했으며, 현재는 종교 및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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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기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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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기념각 안녕하세요! 이곳은 오웬기념각이에요.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했던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 William L. Owen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된 양옥 건축물로 광주광역시 유형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답니다. 그렇다면 오웬은 어떤 인물일까요? 오웬은 1898년 11월 한국에 와서 유진 벨 선교사와 함께 목포에서 선교활동을, 1904년 12월에는 배유지 선교사와 함께 광주에서 선교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1909년 4월 3일 과로로 인한 급성폐렴으로 사망하게 되었죠. 그 후 그의 선교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국의 친지들이 성금을 보내와 그와 할아버지를 위한 기념각을 지었고, 이것이 오웬기념각이랍니다. 이 때문에 대리석 현판에는 “IN MEMORY OF WILLIAM L. AND CEMENT C. OWEN”(“오웬을 기억하며”)라고 쓰여 있는데, 영어뿐만 아니라 한자로도 기념각이라고 쓰여 있어요. 서양 문화예술의 보급소였던 오웬기념각은 일제 강점기 때 민족의식 배양의 요람이었고 호남의 대표적인 집회소이자 문화예술회관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광주의 첫 시민운동조직도 여기서 시작되어 전남 전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창극’과는 다른 서양식 연극, 오페라 그리고 현대무용 등의 모든 현대 문화예술 행사가 선보인 곳으로 1920년 광주 최초의 음악회인 ‘김필례 음악회’가 여기에서 열리기도 했답니다. 오웬기념각은 광주에서 서양의 문화예술을 전파하는 매개체를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서로 만나 결합하는 공간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오웬기념각의 관람석 중앙에는 남녀 좌석이 구분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1921년에 열렸던 블라디보스톡 교포음악단의 공연에서 남녀가 쌍쌍이 춤을 추는 사교춤이나 탭댄스를 선보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어요. 개방적인 근대 서양의 문화가 폐쇄적인 봉건적 유교문화와 만나 서로 교류하면서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지요. 기부금으로 건축된 이곳은 스와인 하트 선교사가 중국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지은 건물이에요. 일본 기술자는 인건비가 비싸고 한국 기술자는 경험이 부족하여 중국인을 선택한 것이었죠. 아름답게 꾸민 반원형의 아치와 한국의 전통건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석으로 만들어진 기둥, 경사진 지붕의 2층 구조로 되어 이색적인 모습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르네상스식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오웬기념각은 맨 아래에 화강암으로 줄기초를 놓고 그 위에 회색 벽돌을 쌓은 네덜란드식 벽체로 구성되었어요. 외관은 좌우대칭의 균형을 이루었고 그 중심부에 현관을 두었는데 철제 주물로 만든 원형기둥을 두 쌍으로 배치하였고 그 위에 반원아치를 틀어 의장적 아름다움과 좌우 측에 대칭으로 뚫린 창호를 두어 개방감을 살렸답니다. 창호의 위는 결원 아치를, 아래는 수평대를 주었고, 내부는 튼실한 네모의 목조 기둥이 있어 2층의 좌석과 목재 지붕틀을 받치고 있답니다. 평면 형태는 정방형이지만 내부 구조가 모서리에 위치한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이고, 바닥은 설교단을 항하여 약간 경사지게 하여 예배나 집회의 장소에 적합하도록 철저하게 설계된 곳입니다. 물론 2층 노대는 설교단 방향으로 경사져 있지요. 현관 개구부는 숭일문이라 불리는 북측 문과 수피아문이라고 불리는 서측 문이 있는데, 동측과 남측 모서리에 외짝의 조그마한 부출입구가 있고 이 출입구로 진입하면 이층 노대로 향하는 계단과 만나게 됩니다. 전체 마감은 벽돌로 하였는데 입면상에서 층을 나누는 수평 띠와 수직 부축벽인 필라스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또한 조적식 구조로 되어 있어요. 창문을 아치형으로 축조한 것은 건축물의 구조에서의 장식 효과를 위한 것이라 추정되며 동측 부분 하부에는 환기를 위해 바닥 아래의 개구부도 보입니다. 또한 모서리 부분은 직선으로 면 처리가 되어 있어요. 창의 형태는 높은 고창으로 종 방향으로 장방형 형태를 띠고 있는데, 지붕틀은 지금도 튼실한 목조 트러스로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의 형태는 우진각으로 동판을 씌워놨습니다. 드라마 각시탈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독특한 서양식 건축으로 당시 광주는 물론 인근 고을에서 구경꾼을 불러 모을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오웬기념각을 만나보시죠.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