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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몽촌토성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몽촌토성은 한강 지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진흙을 다져 쌓아 성벽을 만든 백제의 토성이다. 특히 북벽의 단을 이룬 곳에서 목책을 세웠던 흔적이 발견되어 나무 울타리로 방비했음을 알 수가 있다. 토성은 남한산성에서 뻗어 내린 구릉지를 이용하여 외성과 내성으로 중첩된 구조로 지어졌으며, 백제가 고대 국가의 터전을 마련한 한성시대, 즉 3~4세기 때 만들어진 거성의 하나로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되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올림픽공원 북 2문에서 몽촌토성 방면으로 가다 보면 몽촌역사관이 있다. 몽촌토성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역사관으로 몽촌토성의 역사와 백제 문화의 흔적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몽촌토성] - 도보, 자전거 05:00~22:00 - 차량 06:00~22:00 [몽촌역사관] - 09:00~18:00
휴무일연중무휴
주차가능
문의02-2147-2001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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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백제의 왕성, 몽촌토성 야트막한 언덕 위로 이어지는 길, 이곳은 몽촌토성입니다.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서울의 도심에 고대의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흥미로운데요. 서울 송파구와 강동구 일대가 백제 건국 당시의 도읍지인 한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제의 중심 지역 하면 어디가 떠오르세요? 흔히 공주와 부여를 꼽게 되죠. 하지만 그 이전에 이곳 서울, 즉 당시의 한성에서 백제는 약 500년 간 역사와 문화를 다져갔어요. 한강은 훌륭한 교역로였고, 강을 끼고 지어진 몽촌토성은 한성백제의 궁궐을 든든히 지키는 왕성이었죠.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2.3km로, 성 내부의 면적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4배 정도가 되지요. 이 토성은 남한산성에서 뻗어 내린 구릉을 따라,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활용하여 지어졌어요. 경사가 완만한 지점은 흙을 깎아 경사를 급하게 만들었고, 언덕의 낮은 지점에는 점토를 쌓아 성벽을 높게 만들었지요.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이 때문에 성벽의 높이가 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답니다. 그럼 몽촌토성은 언제 만들어진 걸까요?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몽촌토성은 약 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후에 한성을 점령한 고구려가 6세기 중엽까지 이 토성을 사용했죠. 그러고 나선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이 토성 안에 다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여져요. 이후 잊혀버린 몽촌토성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가운데 발견되어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답니다. 천천히 걸어보시면서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한성백제의 흔적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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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수비 시설, 해자와 목책 몽촌토성은 왕궁이 있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기 때문에 철저한 수비를 위한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해자와 목책이지요. 해자는 외부의 침입이 쉽지 않도록 성 주위에 파놓은 못인데요. 이곳에서는 남쪽을 제외한 성의 삼면에서 해자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성 주변에 있는 자연 하천이 해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해자는 한강의 줄기인 성내천의 흐름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랍니다. 서울올림픽 기념관 앞에 있는 몽촌호와 올림픽 공원의 88호수는 바로 몽촌토성의 해자를 재현해 놓은 것이죠. 다음으로 목책은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를 말합니다. 토성을 걷다 보면 복원해 놓은 목책을 통해 그 구조를 확인해볼 수 있는데, 땅속의 암반층에 구멍을 뚫어 중심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 세운 다음, 그 주위에 다시 보조 기둥을 세워 지탱하는 방식인데, 높이는 약 2미터가 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몽촌토성의 동쪽과 서쪽 성벽에서 이 목책이 발견되었는데, 이곳 말고도 성벽의 여러 곳에 수비 목적으로 목책을 설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지금은 한가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토성이지만, 당시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곳에 긴장이 감돌았을 텐데요. 침입해오는 적은 해자를 건너기 위해 배를 띄우거나 다리를 놓아야 했을 겁니다. 만약 적이 이 해자를 건넜다면, 그들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 쏜 화살은 목책에 꽂혔지요. 목책은 적이 쉽사리 성을 넘지 못하도록 만든 2차 방어선이라고 볼 수 있는 거랍니다. 몽촌토성은 왕궁이 있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기 때문에 철저한 수비를 위한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해자와 목책이지요. 해자는 외부의 침입이 쉽지 않도록 성 주위에 파놓은 못인데요. 이곳에서는 남쪽을 제외한 성의 삼면에서 해자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성 주변에 있는 자연 하천이 해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해자는 한강의 줄기인 성내천의 흐름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랍니다. 서울올림픽 기념관 앞에 있는 몽촌호와 올림픽 공원의 88호수는 바로 몽촌토성의 해자를 재현해 놓은 것이죠. 다음으로 목책은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를 말합니다. 토성을 걷다 보면 복원해 놓은 목책을 통해 그 구조를 확인해볼 수 있는데, 땅속의 암반층에 구멍을 뚫어 중심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 세운 다음, 그 주위에 다시 보조 기둥을 세워 지탱하는 방식인데, 높이는 약 2미터가 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몽촌토성의 동쪽과 서쪽 성벽에서 이 목책이 발견되었는데, 이곳 말고도 성벽의 여러 곳에 수비 목적으로 목책을 설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지금은 한가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토성이지만, 당시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곳에 긴장이 감돌았을 텐데요. 침입해오는 적은 해자를 건너기 위해 배를 띄우거나 다리를 놓아야 했을 겁니다. 만약 적이 이 해자를 건넜다면, 그들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 쏜 화살은 목책에 꽂혔지요. 목책은 적이 쉽사리 성을 넘지 못하도록 만든 2차 방어선이라고 볼 수 있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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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에서 발견된 저장구덩이 몽촌토성 길에 있는 움집터 전시관에서는 토성 안에서 발견된 저장구덩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장구덩이의 전체적인 형태는 원형인데요. 위가 좁고 아래가 넓어서 복주머니 같은 모양이지요. 몽촌토성 안에서는 이 같은 저장구덩이가 31개나 발견되었습니다. 사실 이 구덩이의 정확한 용도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저장구덩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구덩이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에서도 많이 발견되어 왔습니다. 몽촌토성 안에서도 백제시대의 주거 공간인 움집 주변에서 많은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구덩이의 바깥에 비해서 그 속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음식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어요. 한성백제의 사람들은 집 근처에 음식물을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먹었던 것이죠. 하지만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구덩이 중 일부에서는 작은 토기들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이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그릇이나 음식들을 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몽촌토성이 고구려 시대에도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저장구덩이에서도 드러나는데요. 고구려의 토기도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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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3유형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