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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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강화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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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성당을 마주할 수 있는데요. 혹시 한옥으로 된 성당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인천 강화에서는 옛 느낌이 넉넉하게 느껴지는 한옥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현존하는 성당 중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인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입니다. 강화 성당은 심도직물 굴뚝에서 고개를 조금 돌리면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00년에 한옥으로 지어진 대한성공회 성당은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고요한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고요한이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는데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한 사람의 신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신자가 하나 둘 생기게 되었으며, 1898년 6월 강화도에서는 고요한이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었죠. 대한성공회에서는 이러한 인연으로 강화에 제일 먼저 성당을 건립한 것입니다. 성당 건축은 경복궁의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궁궐 도편수가 주도했고,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 와 사용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처음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지요. 강화 성당은 서양과 동양의 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고, 외부는 한식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 불교 사찰의 형태를 하고 있지요. 강화성당은 전체적으로 배 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습니다. 또 뒤쪽에는 신부가 머무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입니다. 강화성당은 일제 침략의 상처가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교회 정문 계단 난간과 종을 뜯어 갔기 때문이지요. 이후 복원 사업을 통해 복원되었답니다.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의지가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강화성당에서는 아직도 매주 일요일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