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성북동)





이 집은 3.1 운동 민족 대표이면서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한용운 선생은 조선의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 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이곳에는 가운데 대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뒤로는 식사 준비는 하는 공간인 천마루방이 있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양옥의 관리사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이라는 현관이 걸려있는데, 이는 근대의 서화가인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다.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이용 정보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만해 한용운 심우장
3:02해설 대본 보기
심우장(尋牛莊)은 북정마을 중간 북사면에 지어진 집입니다. 1933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이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오며 지은 집입니다. 선생은 1944년 입적하시기 전까지 이곳에서 가족들과 지냈습니다. 집 이름인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소는 인간의 본성을 뜻하므로, 내 본성을 찾아가는 장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심우’에 대한 한용운의 생각은 시조 ‘심우장’에 잘 남아 있습니다.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씨 분명하다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집은 벽산 스님이 땅을 제공했고 당시 중동학교 수학 교사였던 최규동이 설계를 하였습니다.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이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을 하게 됐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합니다. 심우장 입구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마당 끝에 곧게 뻗은 향나무는 모두 한용운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완전히 산속이었다고 하는데, 선생이 심우장에 와서 쓴 시 ‘산거(山居)’는 그 제목에서도 심우장 주변의 상황을 짐작게 합니다. 마당을 포함해 100평이 조금 넘는 이 공간은 일제강점기 ‘마지막 남을 조선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조의 공간이었습니다. 친일파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1937년 간도 등지에서 무장투쟁을 하다 잡혀 옥고를 치르던 김동삼 선생이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하고 아무도 감히 시신을 수습하려 하지 않을 때 한용운 선생이 시신을 수습해 와 5일 동안 장례를 치른 곳이 바로 이곳 심우장입니다. 둘은 만주에서 짧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 조헌영, 조지훈 부자입니다. 한의학자이자 나중에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조헌영 선생은 자주 한용운 선생을 찾았다고 합니다. 장례식 때는 그 아들 조지훈 선생과 함께 왔는데, 조지훈 선생은 나중에 그의 글에서 당시의 한용운 선생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조지훈 선생은 나중에 한용운 연구자가 되기도 하고, ‘지조론’이라는 글도 쓰게 됩니다. (이 가이드는 배우 이청안 님의 목소리로 녹음되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