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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사직동)

황학정(黃鶴亭)은 1899년(광무 3) 고종 황제의 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궁술을 연습하도록 지은 사정(射亭, 활터에 있는 정자)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군대 제식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이 거의 사라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종이 ‘국민들의 심신단련을 위하여 궁술을 장려하라’는 어명을 내렸고, 궁궐 내에 황학정을 지어 일반 백성들에게 개방하였다. 고종은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황학정을 옛 등과정 터인 사직동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등과정은 조선시대 인왕산 아래 웃대에 있던 다섯 곳 사정 가운데 하나였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황학정은 활터 건물의 본보기로 현재까지도 활쏘기 행사가 열리며, 국궁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10:00~17:00
휴무일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주차가능
문의02-738-5785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화여유
  • 수여유
  • 목혼잡
  • 금보통
  • 토혼잡
  • 일혼잡
  • 월여유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황학정 "

    2:14
    해설 대본 보기

    " 2코스 독립과 매국의 길 배화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중심인물 (안내) 가수 송민경 (배역) 김경화(배화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중심인물) 황학정은 1898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명으로 지어진 정자인데요, 본래 자리는 이곳이 아닌 경희궁이었습니다. 고종은 국궁을 장려하기 위해 경희궁 회상전 북쪽 담장 근처에 황학정을 세우고 민간에 개방했습니다. 당시 경희궁은 경복궁의 중건으로 궁궐 대부분이 헐리거나 옮겨졌고요, 다른 궁궐들의 경작지로 분배되어 더 이상 궁궐의 역할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경희궁에 일본은 1910년 경성중학교를 세우고 남아있던 건물들을 학교 건물로 사용했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마자 일본은 법궁 경복궁을 비롯해 조선 왕조와 관련된 곳은 온전히 두지 않았습니다. 1922년 또 다시 일본은 경희궁 부지에 전매국 관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남아있던 황학정을 이전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가 하면요 조선시대 땅과 곡식의 신에게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던 사직단 근처였습니다. 일본은 경희궁과 사직단 영역의 파괴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지금도 황학정은 국궁 1번지라 불린다고 해요. 본래의 장소는 아니긴 해도 여전히 활을 쏘는 정자라는 본래의 역할을 이어오고 있어 다행입니다. 황학정 근처에 ‘국궁’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국궁전시관이 있으니까요,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 제가 아는 여성들 가운데 활을 즐겨 쏘던 분이 많았죠. 활은 남녀를 가리지 않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뚫는 쾌감은 정말 짜릿합니다. "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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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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