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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박물관

부산광역시 영도구 해양로301번길 45

국립해양박물관은 대한민국 해양문화의 랜드마크로서 해양의 역사·문화·생물·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유물과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하는 종합 해양 전문 박물관이다.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위치하며, 2012년 5월 개관하였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 해양도서관, 어린이 박물관, 수장고, 수족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은 약 3만여 점의 해양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기획전과 상설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한, 바다 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자 해양동물전문구조치료기관, 서직지외보전기관으로서 생물을 보호·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린이박물관, 어린이해양도서관을 포함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민 누구나 바다의 소중함과 미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국립 해양문화 플랫폼이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 평일 09:00~18:00- 주말 09:00~19:00
휴무일매주 월요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이용요금무료
문의051-309-1900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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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보통
  • 수여유
  • 목여유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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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국립해양박물관은 인류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담은 박물관이에요. 나의 바다, 우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해양에 대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서는 즐거운 체험을 통해 바다를 이해할 수 있지요. 해양문화, 해양산업, 해양과학 등 해양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해양박물관은 해양의 미래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국내 최대의 해양문화공간인 국립해양박물관은 멋진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바다의 파도를 형상화한 구성과 패턴은 해양박물관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지요. 바닷속과 바다 해면을 모티브로 공간을 연출했다고 하는데요.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와 바람결에 흔들리는 바다 이미지를 벽면의 형태와 조명에 적용하여 바다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지요. 바다를 닮은 건물의 디자인은 바다와 가까워진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는 다양한 테마 전시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요. 다양한 유물을 통해 인류와 함께 공존해 온 바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지요. 수족관과 해양체험 공간이 있어서 해양생태계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통해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바다 생물들을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답니다. 해양과 관련된 많은 자료가 있는 해양도서관에서는 자유롭게 정보를 접하고 이용할 수 있지요. 바다와 환경을 주제로 한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고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어린이 박물관도 있어요. 바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은 바다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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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국립해양박물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국내·외 해양 문화와 해양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 연구, 전시하며 국민들에게 해양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저와 함께, 우리 선조들이 바다와 함께 살아가면서 쌓아 온 기록과 예술, 생활 문화 등 다양한 해양 문화 관련 전시품을 둘러보며 우리나라 해양 문화사의 진수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시실 입구의 도입부 영상을 보겠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영상은, '우리는 해양 DNA를 지닌 해양 민족입니다'를 주제로,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유적'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된 영상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유적'은 수천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이 자신보다 수백 배나 큰 고래를 사냥하기 위해 작살과 소형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사냥하는 모습을 바위에 새긴 그림으로,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영상을 통해 우리 민족은 선사시대부터 바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삶을 살아왔음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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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속 우리 바다 : 우리 바다, 상상의 기록 인간은 오래전부터 바다와 함께 생활하면서 몸소 경험한 사실이나 상상했던 미지의 세계를 글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한 기록들에는 당시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본 다양한 시선과 생각, 그리고 여러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기록이 남겨졌던 그 당시의 바닷길, 바다의 흐름과 같은 해양 지식, 바다 위를 표류하는 여정을 경험한 기록, 그리고 바다를 담은 문학과 유배에 관한 이야기 등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인간의 모습들이 문자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바다에 대한 기록을 보며 당시의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코너에서는 다양한 기록 가운데 바다를 소재로 한 고전 소설들을 먼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를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으로도 여겼고, 이러한 경외심은 바다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인 깊고 깊은 바닷속을 상상하며 화려한 용궁이나 전지전능한 용왕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이는 대부분의 고전소설에서 비슷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먼저 바다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고전 소설인 <별토전>을 보시겠습니다. 이 자료는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별주부전’, 혹은 ‘토끼전’ 등으로 불리는 판소리계 우화 소설입니다. '별토전'은 용왕의 충신인 자라가 용왕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떠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자라는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바닷속 용궁의 모습을 화려하게 묘사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당대 사람들이 가졌던 바다 속에 대한 상상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심청전>역시 바다를 소재로 한 유명한 고전 소설이며, 우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는 1857년도 작품입니다. '심청전'의 주요 줄거리는 장님인 아버지를 모시는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인당수에 빠지지만, 죽지 않고 용궁에서 잠시 머무르다 무사히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가 결국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청전’에서의 바닷속 용궁은 고래 뼈를 높이 걸어 집의 대들보로 삼고, 물고기의 비늘로 지붕의 기와를 대신하는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별천지의 세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예로부터 깊은 바다 아래는 사람들에게 이상향의 세상임과 동시에 현실의 고난이 극복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와 염원이 모인 공간으로도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고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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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바다, 항해의 기록 표류란 항해 중에 뜻밖의 사고로 배가 먼 바다로 떠밀려가 정처 없이 물 위를 다니는 일을 말합니다. 뱃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표류는 두려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뜻하지 않게 다른 장소를 발견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표류한 경험을 다양한 기록으로 남겼고,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바다를 통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표해록'은 달아난 죄인을 잡아들이는 관직을 받아 제주도로 부임했던 '최부'라는 관리가 남긴 표류 기록입니다. 최부는 1487년 부친상으로 제주에서 배를 타고 고향인 나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17일간 표류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중국 명나라 절강성 영파부 해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최부는 '표해록'에 그들 일행이 표류하며 배 안에서 겪었던 일들과 중국에 표착 후 왜구로 오인 받은 일, 그 후 북경에 도착하여 명나라 황제를 만난 일 등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6개월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표해록'은 15세기 명나라에 대한 정보와 함께 최부와 명나라 지식인들 사이의 대담 내용도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 양국의 문화 교류의 양상이 어떠하였는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써 의미가 깊습니다. '하멜 표류기'는 서양인인 하멜과 그 일행이 뜻하지 않게 우리나라에 표착하여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귀한 자료입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선원이었던 헨드릭 하멜은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제주도로 표류하게 되어 조선에서 무려 13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네덜란드로 귀국한 하멜은 조선에 억류된 기간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그간의 고된 여정을 기록해 회사에 제출하게 됩니다. 그 때 하멜이 제출한 보고서를 본 출판사들이 보고서 속에 흥미로운 내용들을 위주로 각색해서 책으로 출판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하멜 표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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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대한 바다, 관찰의 기록 우리의 선조들은 바다와 함께한 생활 속에서 다양한 관찰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 사람들이 바다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여러분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라는 구절을 들어보셨나요? 바로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시조인 어부사시사에 나오는 구절이지요? 바로 이 어부사시사가 실려 있는 '고산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윤선도가 유배시절에 자연과 교감하며 느꼈던 것들을 시조로 남겨 엮은 시문집입니다. '어부사시사'는 윤선도의 고향인 전라도 완도 보길도를 배경으로 어부의 생활을 사계절인 춘사, 하사, 추사, 동사로 나눠 각 10수씩 노래한 연시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부사시사'에서의 '어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고기잡이 어부가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사대부 계층을 의미합니다.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낚시를 하며 시를 읊고 서로 술잔을 기울이던 옛 양반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지기도 하는데요. 윤선도는 바다를 보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즐기는 관찰자 시점에서 어부의 생활을 기록했습니다. '조행일록'은 1863년 조선 후기 전라도의 세곡을 배로 운반했던 과정을 기록한 임교진의 일기입니다. 당시 함열현 현감이자 조세운영관이었던 임교진은 세금을 모으는 과정부터 한양에 도착한 뒤 여러 관청에 들러 세금을 납부하는 일들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세를 걷는 과정부터 곡물의 상태와 수량뿐만 아니라 뱃사공들의 임무를 나누는 일까지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행일록'은 현재까지 밝혀진 조운과 관련된 일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운 업무를 했던 증빙자료이자 조운 업무를 담당할 후임 관리를 위한 참고 자료 역할도 했습니다. 이 일기는 강과 바다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한 귀중한 자료로써 현재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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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웃 나라, 사행의 기록 예로부터 국가 간의 교류를 위해 사신들은 사행길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사행들은 주로 육로를 이용하였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육로가 막히거나 바다를 건너서 가야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바닷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험한 바닷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신들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사행길에 오르며 하루하루 여정을 기록에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사행록이라고 부르는데요. 지금부터 바닷길을 이용한 해로사행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중국사행 관련 자료로 '죽천이공 행적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의 중국 사행은 대부분 육지 길로 오갔었지만 ‘죽천이공 행정록’의 저자인 이덕형이 명나라에 갔던 시기는 명나라와 청나라가 치열하게 다투던 때로, 육로가 일시적으로 단절되어 바닷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행록은 인조의 책봉을 위해 1624년 6월부터 10월까지 명나라에 주청사로 다녀왔던 이덕형이 남긴 기록으로써 당시 항해 일정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덕형 일행은 이미 1620년과 1621년에 먼저 해로 사행을 떠났던 사신들 전원이 익사하거나 선박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사행록 내용 중에는 '회오리 바람이 급히 일어나 산 같은 물결이 하늘에 닿았다. 배가 물결에 휩쓸려 백 척 물결에 올라갔다가 다시 만 길 못에 떨어지니 어찌할 방책이 없어 하늘에 축원할 뿐이라' 라는 글이 있는데요. 목숨을 걸고 떠난 사행길에서 이들은 많은 난관과 위기를 만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바다에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죽천이공 행적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한글 사행록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해양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기에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일본 사행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로 시대별로 활발히 교류해왔습니다. 조선중기 임진왜란으로 인해 단절됐던 국가 관계는 조선을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일본 막부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재개됐습니다. 바로 조선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막부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문화적인 교류를 위해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했던 국가 사절단이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진열장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경상감영문서등록'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경상 감영에서 발급하거나 수취한 각종 문서를 옮겨 적어놓은 자료로, 통신사가 사행에 가져가야 했던 특산품 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때 예단들은 주로 일본 막부 측의 요청에 따라 마련되었으며 그 당시 최고로 인정받은 인삼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보실 작품인 '조선통신사 행렬도'는 1711년 통신사 행렬을 그린 그림입니다. 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 화원, 의원, 역관, 마상재 등 총 인원이 4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대규모였으며, 당시 여러 척의 배를 나누어 타고 일본을 오갔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통신사를 수행했던 화원이 부산에서 대마도를 거쳐 에도에 이르는 통신사 노정을 30폭에 담은 그림으로 통신사로 참여했던 당시 사행들의 모습을 잘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유리벽 바깥에 보이는 커다란 선박을 보시겠습니다. 이 선박은 조선통신사선이라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행인 1811년 신미통신사행이 타고 갔었던 선박을 여러 그림 등을 참고하여 이분의 일 크기로 복원한 것입니다. 전시된 배는 총책임자인 정사가 탑승했던 정사선을 복원해 둔 것으로, 정사를 뜻하는 바를정(正)이 쓰인 깃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쪽 가마에 정사가 탑승했으며 가마 아래쪽은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잠을 자며 생활했던 선실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해 선실 벽을 굉장히 화려하게 채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배 뒤쪽을 보시면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 깃발을 보실 수 있는데 이는 마상재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마상재는 말을 타면서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당시 일본에서 마상재는 지금의 아이돌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제 선박과 마주보는 뒷 편을 보시겠습니다. 지금 보이시는 영상은 조선통신사 사행단이 일본 에도에서부터 조선의 부산까지 귀국하는 여정을 상세하게 그린 ‘귀로도중도’라는 작품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통신사행이 배로 지나간 바닷길은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육로로 이동하며 들린 일본의 주요 도시와 사찰, 명승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상으로 상설 전시실 해양관의 첫 번째 코너, 기록 속 우리 바다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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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 해양로301번길 45 (동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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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