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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김제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옛 저수지의 중수비와 둑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8 백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실제로 만들어진 때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다. 1420년(세종 2년)에 큰 폭우로 유실되었다. 지금 유적에는 일직선으로 약 3㎞ 정도의 둑만이 남아있는데,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대는 통로로 고쳐 이용하면서 그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둑의 북쪽에는 조선 시대에 벽골제를 다시 쌓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닳아서 글을 알아보기 어렵다. 1975년에는 저수지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대규모의 높은 수준의 측량 기술이 이용된 공사였던 것이 밝혀졌다. 벽골제는 단순히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라는데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이미 이러한 저수지 축조가 가능할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토목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도 획기적인 사실을 제공해 주는 유적이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 동절기(11월~2월) 09:00~17:00
휴무일매주 월요일 / 1월 1일
주차가능 (1,700대)
문의063-540-4094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혼잡
  • 토혼잡
  • 일혼잡
  • 월여유
  • 화여유
  • 수보통
  • 목여유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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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