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읍성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성안2길 55-8





언양읍성은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쌓은 성이다. 삼국시대부터 흙으로 쌓은 토성이 있었는데, 돌로는 1500년(연산군 6년)에 처음 쌓았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617년(광해군 9년)에 새로 쌓았다. 현존하는 이 읍성은 남북이 각 380m로 직사각형을 이루고, 둘레는 1,520m에 이른다. 성의 형태는 전형적인 읍성으로, 각 방향마다 성 중간에 동·서·남·북문이 옹성(甕城)으로 되어 있고, 각 모서리에는 각루(角樓)가 4개소 있으며 문과 각루 사이에는 치(雉)가 있는데, 치는 각 방면마다 2개씩 모두 8개소이다. 예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용 정보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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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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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언양읍성
3:11해설 대본 보기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하는 성을 말합니다. 성안에 관아와 객사, 향교 같은 관공서를 두고 우물이나 연못 같은 시설도 마련하였습니다. 평상시에는 행정적인 기능을 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군사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언양에 읍성이 있다는 것은 옛 언양이 행정·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옛 언양고을은 경주, 울산, 밀양, 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언양읍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토성입니다. 이후 1500년인 연산군 6년에 현감 이담룡이 돌로 고쳐 쌓으면서 석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보통의 성벽은 반듯한 돌 또는 산돌을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축조하는데 언양읍성은 거대한 바위를 굴려서 면만 다듬어 바르게 잡은 다음 그 위에 역시 큰 돌을 떠다 얹고 그 틈새에 무수한 잔돌을 끼워 박는 방법으로 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매우 견고하여 웬만한 충격에는 견디어 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상당한 부분이 잘 남아 있습니다. 언양읍성은 성 둘레가 1,500m이고 동서남북에 4개의 문을 만들고 그 위에 영화루(남문), 망월루(동문) 등의 누각을 지었습니다. 성벽 모서리에는 보초병이 망을 보던 각루를 세웠고, 성문 주위에는 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둥글게 옹성을 쌓은 이유는 적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벽 중간 중간에 돌출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문지나 포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방어에 상당한 경험과 군사지식이 있는 사람의 설계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는 남문인 영화루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영화루에 올라가면 읍성 일대가 훤히 보입니다. 예전에는 동쪽에 동헌이, 서쪽에 객사가 있었고,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도로와 동문과 서문을 가로지르는 수로(水路)가 있었으며 4개의 우물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요. 읍성 복원 지역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성벽 위로 고즈넉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바람은 삼국시대에도 불고 조선시대에도 불었겠지요. 어제와 오늘을 잇는 그 바람에 언양고을 역사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