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동교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7-1



이 건물은 1893년 미국선교사 새뮤얼 무어 목사가 설립한 승동교회의 교회당으로 1910년에 짓기 시작하여 1912년에 완성되었다. 붉은 벽돌을 이용한 양옥 건물인 이 교회당은 동적인 구조를 갖춘 초기 개신교 교회당의 대표적인 건물로 그 규모가 웅장하다. 건물 1층 방들의 벽이 2층의 넓은 예배실 공간과 바닥을 받쳐 주는 벽돌조 건축의 전형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건물의 벽체와 창호 주변, 지붕과 바닥 틀 등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축기술의 정착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승동교회는 1919년 2월 20일 이 교회의 청년면려회장으로 있던 연희전문학교 학생 김원벽(1894~1928)을 비롯한 각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제1회 학생지도자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2월 28일에 열린 제4회 회의에서는 학생조직 동원을 최종 점검하고 독립선언서 배포 등과 관련된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다음날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을 시발점으로 하는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한 1922년에는 이 교회에서 조선여자기독교 청년회가 설립되어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승동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자주독립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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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동교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승동교회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숨 쉬는 곳으로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893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무어와 16명의 교인으로 시작한 승동교회는 당시에 교회가 승동에 위치하고 있어서 승동교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요. 현재는 승동이 인사동에 편입되었지만, 설립 당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승동교회의 건물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으며 약 200평 규모입니다. 설계자와 시공자는 알 수 없다고 해요. 지금은 주변 건물에 가려서 본래의 위풍을 볼 수 없지만 설립 당시에는 주변 건물에 비해 높고 당당한 건물이었다고 해요. 19세기 말에 지어진 초기 개신교 교회당의 대표적인 사례인 승동교회는 벽돌로 지어졌는데요.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고쳐지어졌지만, 건물의 기본적인 형태나 구조는 변함이 없으며 보존 상태도 매우 좋다고 합니다. 승동교회는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1919년 2월 20일 학생 대표들이 1층 기도실에 모여서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한, 이른바 제1회 학생지도자대회를 열었던 곳이에요. 사흘 뒤인 23일에 다시 승동교회에 모여서 범민족적인 독립만세운동에 합세할 것을 결의하였다고 해요. 승동교회는 한국 기독교와 민족운동의 역사가 숨 쉬는 곳입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