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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오릉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7-1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1969년 8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왕비 1명의 무덤이라 나와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 승하 후 7일 만에 몸이 다섯 개로 흩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오릉 동편에는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는 숭덕전이 있으며, 그 뒤에는 알영부인의 탄생과 관련한 알영정이 보존되어 있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휴무일연중무휴
주차가능
문의054-750-8612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금여유
  • 토혼잡
  • 일혼잡
  • 월보통
  • 화여유
  • 수여유
  • 목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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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대본 보기

    5기의 능이 있어 오릉이라 부르는 이곳은 신라의 역사 인물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오릉은 도굴되거나 발굴된 적이 없어 주인이 누군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무덤의 주인을 추측해 볼 수는 있어요. 먼저, 삼국사기는 5기의 무덤에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거서간과 그의 부인인 알영왕비, 2대왕 남해 차차웅, 제3대 유리 이사금, 제5대 파사 이사금의 무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사릉원 안에서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때‘사릉’의 사는 뱀 사자입니다. 장례를 치를 때 큰 뱀이 나타나서 붙은 이름으로,‘오릉’의 다른 이름입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기록이 조금 다릅니다. 5기의 능을 박혁거세 거서간의 단독 무덤으로 본 것이죠. 박혁거세가 왕위에 오른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졌고, 왕비도 왕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나라의 사람들이 흩어진 시신을 수습해 같이 묻으려고 하자 커다란 뱀이 나타나 방해를 했지요. 그래서 다섯 부분으로 흩어진 몸을 각각 묻었어요. 그것을 오릉이라고 하고, 뱀이 나타나서 사릉이라 했답니다. 두 이야기가 전하는 무덤의 주인이 조금 다른데요.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오릉에는 5기의 왕릉뿐만 아니라 숭덕전, 알영정 등 곳곳에 볼거리들이 많으니 구석구석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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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릉 안에는 박혁거세의 위패를 모신 숭덕전이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때 다시 지었고, 숙종 때 수리했어요 이곳에 모셔진 박혁거세는 어떤 사람일까요? 박혁거세는 신라의 가장 첫 번째 왕인데요, 당시에는 왕이라는 칭호가 아닌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박혁거세 거서간이었죠. 거서간은 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작은 나라의 수장을 부르는 말이었어요. 이후 신라 왕들은 무당이라는 뜻의 차차웅, 연장자를 뜻하는 이사금. 으뜸, 우두머리라는 뜻의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지요. 지금 우리가 흔히 부르는 왕이라는 칭호는 22대 왕인 지증왕 때부터 사용한 것이랍니다. 숭덕전에서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를 기리기 위한 제사가 치러집니다. 처음에는 국가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와서는 박씨 문중에서 주관하여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숭덕전에는 박혁거세와 숭덕전의 내력을 적은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도 여러 동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제향에 사용되었던 제기 중 2점은 지금까지 파악된 조선시대 국가 제사에 사용되던 금속제 제기 가운데 가장 연대가 앞서는 유물입니다. 숭덕전 뒤로는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 왕비가 태어났다는 알영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숭덕전을 둘러본 뒤, 알영정으로 이동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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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대본 보기

    오릉의 숭덕전 뒤편에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알영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곳이지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알영의 탄생 설화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에서 닭을 닮은 용이 나타나 옆구리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용이 낳은 아이는 얼굴과 모습이 매우 고우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 같았어요. 이에 월성 북쪽 냇물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그 냇물을 발천이라고 하지요. 아이의 이름은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지었으며, 탄생을 기이하게 여겨 아이를 거두어 길렀어요. 이후 이 아이는 커서 박혁거세의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박혁거세도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서 태어났는데 부인인 알영도 우물에서 태어났네요. 옛날 사회에서 우물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식수를 공급해 줄 뿐만 아니라 물이 곧 생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혹시 박혁거세와 알영의 탄생 설화의 배경이 우물가라는 점도 이러한 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까요?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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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