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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

동십자각은 광화문에서 연결되어, 경복궁 외궁성이 건춘문을 향하여 꺾이는 부분에 세운 망루이다. 석단은 조선시대 초기의 유구로 추측되나 누각은 흥선대원군 시대의 건립으로 추측된다. 규모는 작지만 조화로운 예술적 조형미로 경복궁 내 뛰어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평면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세 칸 방형이며 축부 구성은 하방과 창방만을 짜 올리고 벽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주간에는 무벽의 개방식이며 바닥은 흙바닥으로 되었다. 동십자각은 궁성의 동남 모퉁이에 세웠던 망루와 같은 돈대 건물의 기능을 갖고 있던 것인데 궁성 원장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가에 독립건물의 모습을 갖게 됐다. 서십자각은 궁성 전면 양 모서리에서 궁 내외를 감시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인데 헐리어 현재는 볼 수 없다.

이용 정보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무일연중무휴
주차불가능
문의경복궁 관리소 02-3700-3900

혼잡도 예측

앞으로 일주일간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인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수준입니다.

  • 화보통
  • 수여유
  • 목여유
  • 금여유
  • 토혼잡
  • 일혼잡
  • 월혼잡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방문자추이예측

오디오 해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해설 음원입니다. 대본도 함께 확인하세요.

  • 홀로 남은 십자각

    3:02
    해설 대본 보기

    [김내관] 경복궁은 사방에 담장을 둘렀고 담장의 사방에 네 개의 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과 이어지는 담장의 양 끝에 망루를 세웁니다. 이 망루를 십자각(十字閣)이라 하는데, 동쪽과 서쪽에 있다고 하여 동십자각(東十字閣), 서십자각(西十字閣)이라 불렀습니다. 이 두 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오면서 수난을 겪게 되는데, 서십자각은 1923년. 전차 노선을 세우면서 헐어버렸고, 동십자각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광화문을 옮기면서 이어진 담장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양 옆으로 도로가 생기면서 지금은 도로 위의 섬이 되어 혼자 남았습니다. [김상궁] “이 동십자각 위에 있는 누대는 ‘성상소(城上所)’라고 해서 궁궐을 드나드는 사람을 감시했었어요. 눈초리들이 얼마나 매서운지, 난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장옷을 꼭꼭 여미고 조용히 다녔다니까요.” [김내관] “뭔가 찔리는게 있는 거 아니에요? 소주방에서 참(새참, 간식)으로 나갈 꿀떡을 혼자 꿀떡꿀떡 얻어먹었다던지 뭐 그런거….” [김상궁] “아니거든요?! 내가 그랬으면 동십자각 계단에 있는 서수(瑞獸)한테 벌써 혼났을 거라구요. 상상의 동물이라도, 서수는 악한 것을 쫒아내기 때문에, 금방 걸린다구요.” [김내관] “안타깝지만, 그 서수는 일제강점기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김상궁이 안 혼난거에요.” [김상궁]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동십자각에 있던 우리 서수는 2019년에 창덕궁에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구요!” [김내관] “아니! 창덕궁에 있었다고?!. 근데, 이름표도 없는데 그 서수상이 동십자각 서수상인걸 어떻게 알아낸거지요?!” [김상궁] “자경전 앞에 서십자각을 지키던 서수가 있잖아요. 두 서수의 모양을 보니 비슷하게 생긴 것이, 암수 한 쌍을 이루는 서수로 하나씩 만들었을 것이다 한거죠.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은 대칭이 되는 구조로 지어졌으니, 서수도 반드시 한 쌍일거라는 말이죠.” [김내관] “일리 있는 말이네요. 근데 일제강점기였다면 그래도 사진기가 있을 때 인데, 사진은 없었나요?” [김상궁] “당연히 동십자각, 서십자각 둘 다 사진이 있었지요. 사진속에 이 서수도 나오기 때문에, 동십자각에서 왔다는 증거가 되었답니다.” [김내관] “거의 90년만에 되찾은 서수상이라…… 참 다행이네요! 언제쯤 동십자각 앞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꼭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겁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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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TourAPI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를 활용합니다. · 최종 확인일 202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