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궁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여 직접 결구되는 민도리양식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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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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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 흥 궁
3:47해설 대본 보기
이곳이 조선 25대 임금 철종의 잠저입니다. 잠저란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라고 하지요.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여기에 세워진 비석부터 살펴보실까요? 이 비석들은 당시 판부사 정원용과 강화유수 정기세의 생묘비로 두분은 부자지간입니다. 아버지 정원용은 유배 중이던 원범이를 왕으로 모셔가기 위해 봉영단 팀을 꾸려 한양에서 내려온 봉영단 팀장 이었고, 아들 정기세는 철종 4년인 1853년 원범이가 살던 초가집을 이렇게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용흥궁 이란 현판을 달았습니다. 이러한 공적을 기려서 고종 1년(1864)에 이렇게 생묘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럼 궁 안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용흥궁은 내전과 외전, 별전 그리고 잠저구기비각이 각각1동씩으로,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이나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으로 지어졌지만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지어져 사람이 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철종은 1831년에 아버지 전계대원군과 어머니 용성부대부인 염씨의 아들로 경행방(현재 종로구 낙원동부근)에서 태어났고 열네 살에 강화로 유배되어 열아홉 살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철종의 초명은 원범이었고 원범이의 집안은 정조임금의 이복동생인 할아버지 은언군 때부터 강화로 유배되었는데, 원범이는 이복형인 회평군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는 역모(민진용 옥사)에 연좌되어 가족과 함께 강화로 유배되어 온 것이죠. 원범이 열아홉 되던 해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 하자 순원왕후가 영조의 유일한 혈통은 강화도에 살고 있는 원범이 뿐이라고 지목하면서 갑자기 한양으로 모셔져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아들로 입적되면서 조선 25대 임금이 되었습니다. 조선 순조, 헌종, 철종,3대를 걸치면서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는데요. 당시 안동김씨 들이 세도를 더욱 견고하게 하려는 의도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가능한 열아홉 원범이를 왕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죠. 유배지에서 평민들의 애환을 몸소 격은 철종은 애민을 가슴에 새기고 성군이 되려는 노력을 해 보았지만 세도정치의 벽은 너무도 강했고 주변에 도움을 줄 그 누구도 없었기에 그는 무능한 임금이었고, 애민을 새겼던 가슴엔 피멍이 들었습니다. 14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철인왕후와 후궁들 사이에 5남 6녀 모두 11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영혜옹주마저 열다섯에 박영효와 결혼을 했으나 3개월도 채 안돼서 사망 했습니다. 1863년 12월 서른 셋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두고 서삼릉 예릉에 모셔진 철종은 안동김씨들이 자신들의 세도를 유지하기 위해 골라 세운 허수아비 임금이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