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 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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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은 신라의 비밀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천년 왕궁이 있던 도성입니다. 흙과 돌로 기초를 다져 쌓고 그 위를 점토로 덮은 토성으로 신라왕들의 주된 생활공간이었죠. 월성은 성곽의 외형이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월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요. 성벽을 쌓을 당시 자연 절벽인 남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아 반달 모양의 형태가 된 것이죠. 월성 이외에도 왕이 머물렀던 성이라고 하여 재성이라 불리기도 했답니다. 월성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에 자주 등장합니다. 파사왕 22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고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지요. 이때부터 월성은 신라의 궁성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그 기능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궁성이 되기 전 월성은 호공이라는 사람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삼국유사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신라 4대 임금인 탈해왕은 어릴 적 초승달 모양의 봉우리를 보고 흠뻑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봉우리에 터를 잡고 산 이는 호공이라는 인물이었죠. 어린 탈해는 이곳을 빼앗고 싶어 꾀를 내게 되는데요. 몰래 숫돌과 숯을 묻어두고 이곳이 자신의 집인데 호공이 빼앗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땅을 파면 숫돌과 숯이 나올 거라면서요. 그렇게 호공의 집을 차지하게 된 것이랍니다. 과거의 월성은 여러 개의 문과 연못, 보물창고인 천존고 등 여러 건물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방어시설인 해자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궁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허전한 모습이지요. 하지만 넓은 터와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월성은 산책 코스로 제격입니다. 따뜻한 날 월성을 산책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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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월성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석빙고는 얼음을 보관하는 장소로, 겨울에 언 얼음을 석빙고로 옮겨와 여름까지 녹지 않게 보관했죠. 학생 : 얼음을 녹지 않게 보관한 곳이라면, 지금의 냉장고 같은 것 아닌가요? 조선시대 때부터 냉장고의 역할을 하는 곳이 있었다니 놀라워요. 선생님 : 사실은 조선시대 이전에도 석빙고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요.삼국유사에는 1세기 유리왕 때 얼음 저장 창고를 지었다고 전하며,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6년에 처음으로 담당관청인 빙고전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또, 겨울에 얼음을 보관한 석빙고를 관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석빙고는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답니다. 학생 : 당시에는 전기도 없었을 텐데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건가요? 선생님 : 석빙고는 정말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어요. 그 원리를 알게 되면 깜짝 놀랄 정도이죠. 반지하에 위치한 석빙고의 지붕은 2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안쪽은 화강암으로, 바깥쪽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어요. 이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힌트는 열전도율입니다. 학생 : 음, 먼저 화강암은 열전도율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배웠어요. 안쪽을 화강암으로 만든 것은 내부에서 열이 발생하게 되면 화강암에게 전달되어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바깥쪽을 진흙으로 만든 것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을 막기 위한 것 같아요. 선생님 : 정확해요. 신라인들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했네요. 또, 석빙고의 바닥은 경사면으로 되어 있어요. 이는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주변 온도를 높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죠. 경사면으로 된 바닥을 통해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 낮은 내부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답니다. 학생 : 선생님, 그런데 석빙고 위에 올려진 돌은 무엇인가요? 선생님 : 환기구입니다. 석빙고 내부의 더운 공기를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만든 장치이지요. 학생 : 우와, 정말 신라인들의 멋진 과학 지식이 느껴지는 곳인 것 같아요. 선생님 :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진 석빙고에서 보관된 얼음은 음식에 사용되는 것 이외에도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한 장례의식과 고열 환자의 열을 내려주는 치료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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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 월성은 과거 신라의 왕궁답게 크기가 꽤나 큰 것 같아요. 특히 성벽은 쌓을 때 굉장히 많은 수고를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맞나요? 선생님 : 맞습니다. 월성의 성벽은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 올리는 성토 기술로 축조했어요. 단단하게 땅을 다지기 위해 식물의 잎과 줄기, 방수나 마감재로 사용되었던 조개껍질이나 석회 등 여러 종류의 흙으로 쌓았죠. 그리고 성벽 최상부에는 사람 머리 크기만한 돌을 4~5단가량 무질서하게 깔아 흙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흙과 다양한 성토 방법으로 성벽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월성의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성벽을 조사하면서 독특한 사실이 발견되었답니다. 학생 : 독특한 사실이라니, 어떤 거예요? 너무 궁금해요. 선생님 : 월성의 성벽을 조사한 결과, 50대로 추정되는 2구의 인골을 시작으로 여성, 아이 등의 여러 인골들이 발견되었어요. 이를 통해 우리는 성벽 축조 당시 사람을 함께 묻은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왜 성벽을 쌓을 때 사람을 묻었을까요? 무덤도 아닌데 말이죠. 당시 사람들은 주거지 혹은 성벽의 건축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하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었어요. 월성의 성벽을 쌓을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이죠. 학생 : 사람을 희생하다니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 :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성벽 축조가 무사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신라인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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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월성을 걷다 보면 한적한 분위기에 기분이 절로 편안해집니다. 가득한 초록 잎과 잔잔한 연못이 그 분위기를 돋우죠. 학생 : 맞아요. 저도 걷다가 마주친 연못을 보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 : 월성에 있는 연못은 ‘해자’라고 하는 곳이에요. 성곽 둘레의 땅을 파고 물을 담아 적이 쉽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방어시설이지요. 현재 볼 수 있는 연못은 발굴조사와 정비 사업 끝에 우리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학생 : 적의 침입을 막은 방어시설이었다니, 단순한 연못이 아니었네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선생님 : 해자는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만든 방식이 조금 차이가 있어요. 통일 이전에 땅에 구덩이를 파서 물을 채운 수혈해자였다면 통일 이후에는 수혈해자 위에 돌로 쌓고 물을 채운 석축해자였죠. 이는 통일이 되면서 수혈해자의 본래 기능인 방어의 의미에 조경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요. 또, 발굴조사 당시 해자에서는 동물의 뼈와 식물 씨앗, 토우, 목간 등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요. 이는 자연경관 복원과 신라시대 생활상 파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지요. 학생 : 과거의 유산이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인 것 같아요. 선생님 : 우리 문화유산들이 발굴되고 보존되어 우리를 거쳐 미래세대까지 전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의 유산을 더욱 소중히 다뤄야겠죠? 그럼, 무려 30여 년간의 발굴조사와 3여 년간의 정비사업을 마친 해자를 좀 더 둘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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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다들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보물창고 하나쯤 만들어 보았던 경험이 있을 텐데요. 신라시대 왕실에도 ‘천존고’라는 보물창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학생 : 신라시대 왕실의 보물창고라니, 어떤 것이 들어있을지 너무 궁금해요. 선생님 : 천존고에 보관했던 대표적인 물건으로는 ‘만파식적’이 있어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문무왕과 김유신이 준 대나무로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을 만들어 천존고에 간직하였다고 전하고 있지요. 만파식적은 ‘만 개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피리’라는 뜻으로 왕이 이 피리를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나았으며, 가뭄이 들면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학생 : 피리만 불면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되었다니, 너무 멋진 피리예요. 저도 가지고 싶네요. 그런데, 이 천존고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선생님 :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천존고는 신라 궁성인 월성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천존고가 실재했는지, 설화에만 등장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방법이 없어요.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그동안 발굴한 신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지었는데, 그 이름을 천존고라 지었답니다. 소장 유물의 열람 공간, 출토유물의 전시 공간 등을 갖추고 있어요. 학생 : 천존고의 이름과 의미를 부활시킨 곳이네요. 저도 나중에 한번 가 보아야겠어요.
출처: 한국관광공사 오디오가이드 오디

